항공기는 서비스 상품을 동시에 생산하고 판매하는 ‘원스톱’ 공장이다. 보통 때라면 B737, A320 소형여객기 한 대가 하루 평균 82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그래야 LCC는 정상적으로 운영이 된다. 지금은 연간 매출 300억원 규모의 이 공장들이 대부분 가동을 멈췄다. 아무리 쥐어짜도 채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레버리지(차입자본)가 높은 항공운송의 원가구조 때문이다. 국내 항공업계는 지금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미국, 유럽도 항공산업이 붕괴 직전이다. 각국 정부의 구제금융이 없을 경우, 오는 5월까지 세계적으로 90%의 항공사가 파산한다는 항공컨설팅기관 CAPA의 지난 16일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세계 항공업계의 피해 규모를 113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수준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악화되면서 각국은 항공업계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파산 경험이 많은 미국의 메이저항공사단체(A4A)는 500억달러(약 60조원)의 구제금융과 80억달러(약 9600억원) 규모의 항공화물에 대한 지원금을 요청했다.
지난 1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운수권(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권리)과 슬롯(특정 시간대에 공항을 이용할 권리)을 사용하지 않아도 회수하지 않고, 공항시설사용료, 상업시설에 대한 임차료를 면제하는 등의 항공사 지원책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3000억원의 긴급융자를 얘기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난 후다. 그러나 대부분 현장의 심각성을 모르는 한가한 얘기들이다. 왜 미국과 유럽은 대통령들까지 나서서 항공업계의 어려움을 우려할까.
하늘길이 닫히는 순간 경제도 폐쇄된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7%밖에 안 된다. 국제선의 셧다운이 계속되면 산업계는 상반기가 끝나기 전에 초토화될 수밖에 없는 시장구조다. 긴급 대책이 절실하다. 유관부처들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컨트롤타워도 짜야 한다.
9·11테러(2001년) 당시 미국의 상·하원은 열흘 만에 ‘항공안전·안정화특별법안’을 통과시켜 항공운송안정화위원회(ATSB)를 구성했고, 150억달러(약 18조원) 규모의 긴급자금지원 계획을 통과시켰다. 당시 약 12조원 규모의 지급보증에는 16개사가 신청해 7개사만이 혜택을 받았는데 그나마 일부만이 불황에서 살아남아 실효성에 의문을 남겼다. 반면, 공급 규모에 비례해 전체 업계에 현금으로 배분한 약 6조원 규모의 지원방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사후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지원사례는 지급보증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과 지원하는 방식이 모두 신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정부는 항공사들의 채무만기 상황부터 점검하고 단기상환을 유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지급보증은 막혀있는 금융회사 차입과 회사채 발행에 숨통을 터줄 것이다. 추경예산에서도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산업안정화기금(가칭)으로 긴급자금을 수혈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항공업계에는 25만 명의 일자리가 걸려있다. 기업이 망하고 난 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뒷북’은 줄여야 한다. 항공업계를 살릴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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