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걱정도 이젠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석유의 역할 축소와 산유국의 시대착오적 행태가 동시에 중첩되는 복합위기(perfect storm) 상태에 진입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작년에 비해 하루 300만~400만 배럴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해결이 지연된다면 하루 최대 1000만 배럴의 수요 감축도 예상된다. 복합위기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면 세계 석유 수요는 20~30% 급감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그간 막대한 초과이윤을 누려온 산유국들은 이기주의적 행태를 고수하고 있다. 이달 초 러시아가 포함된 확대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사우디의 하루 150만 배럴(OPEC 100만, 비OPEC 50만 배럴 감산) 추가 감축 제안을 러시아가 미국 견제를 구실로 거부했다. 사우디는 하루 1300만 배럴의 최대 생산 능력을 가동하면서 수출가격 20% 할인 공세로 맞받아쳤다. 그 결과가 국제 유가 하루 30% 추가 하락과 30달러대로의 가격 붕괴다. 따라서 위기가 발생하고 1년 이내에 가격이 원상 복구된 과거 위기극복 사례가 재현될지는 의문이다. 올 2분기 유가 저점을 20달러대로 보는 의견이 많은 이유다. 단기 저점을 5~10달러대로 보는 극단적 의견도 있다.
결국 기존 석유시장 논리는 붕괴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주체들의 선택이 불가능한 부정적 외부효과로 작용해 기존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다. 효율적 방역을 위해 세계 각국은 ‘비접촉 디지털’ 사회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움직이는 것’이 존립 근거인 에너지산업에는 결정적 타격이다. 잉여설비의 효율적 관리와 추가 투자조달 한계가 커진다. 특히 국경 폐쇄 등 세계화 추세의 후퇴는 ‘미국 우선주의’ 등 국가이기주의 정책에 따라 이미 많이 훼손된 석유 등 화석에너지산업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생산과 소비지, 소비자가 확연히 분리돼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가치 창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低)유가로 인해 대체에너지 투자가 주춤할 수도 있지만, 석유산업 회생과는 거리가 있다. 모든 국가가 좀 더 혁신적인 청정에너지의 장기 개발에 중점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대응 차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또 이번 사태는 ‘석유의 시대’가 ‘전력의 시대’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 같다. 디지털 경제의 기반은 전력이어서다. 따라서 대량 안정 공급이 가능한 청정전력이 미래 에너지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까. 첫째, 글로벌 석유시장 붕괴의 후유증에 대비하고, 망가진 해외 에너지 도입 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셰일 투자를 모색하고 전략석유 비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 방역과 에너지 협력을 병행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정책 실패의 원인이기도 한 선진국들의 ‘공짜’ 석유 정보는 주의해야 한다.
둘째, 가장 중요한 장기 대책은 글로벌 에너지시장의 회복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청정전력 복원 추세 속에서 우리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원전과 가스발전의 실질적 국제연대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셋째, 불확실한 신에너지 개발 확대는 당분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올 3분기까지는 에너지정책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 코로나19 발생 전 유가인 배럴당 60달러 수준 회복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극복 실적을 과시하기를 바라는 이념 편향 정책당국은 특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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