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셋집, 씨가 말랐습니다"

입력 2020-03-26 11:14   수정 2020-03-26 15:15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서 ‘고덕 아르테온’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던 신혼부부 박모 씨(33)와 허모 씨(36)는 몇 달 새 높아진 전셋값에 깜짝 놀랐다. 올 초부터 전용 84㎡ 매물을 알아봤는데 두 세달 사이에 전셋값이 2000만~5000만원 올랐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전용 84㎡는 지난 1월까지만 하더라도 5억원 전후에서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최근엔 5억원대 중반~6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박 씨는 “가격도 올랐고 전세 매물도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며 “4000가구가 넘는 아파트라 입주장에 전셋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여유를 부리다가, 몇천만 원 목돈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양도세 비과세 요건이 까다로워 지면서 서울 대단지 새 아파트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 2년을 거주해야 양도세를 내지 않게 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내놓지 않고 직접 거주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통상 20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가 입주하면 일시적으로 공급이 확대되면서 지역 내에 전셋값이 떨어지곤 한다. 해당 단지는 입주마감기간이 임박할수록 집주인들은 잔금을 맞추기 위해 낮은 가격에 전세를 내놓기도 한다. 대출제한이나 지연이자 등을 감안해 전세가가 내려갔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대단지 새 아파트 '입주장 효과' 사라져

26일 고덕동 일대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고덕 아르테온 아파트 전용 84㎡ 전셋값은 5억원대 중반~6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 지난 1월까지만 하더라도 5억원~5억5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오름세를 보이는 중이다. 작은 주택형인 전용 59㎡의 경우 세대수(101가구)가 적어 더 가파르게 전셋값이 뛰는 추세다. 올 초 가격은 4억~4억4500만원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4억7000만~5억원대 선에서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4066가구에 달하는 이 아파트는 지난달 입주를 시작했다. 고덕동 A공인중개사는 “두 세달 전에 있던 5억원선 매물은 융자가 있는 물건 외엔 최근엔 거의 사라졌다”며 “집주인들이 최소 5억2000만~5억3000만원가량 가격엔 전세를 놓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달 말 3000가구 규모 입주가 예정돼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센트럴 아이파크위브’ 역시 전세가격 하락이 거의 없다. 지난달까지 전용 84㎡ 전세 매물 대부분이 4억5000만원 가량 가격대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5억원짜리 물건도 나오고 있다.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 아파트 전셋값도 한달 새 2000만~3000만원가량 올랐다. 지난달 5억원에도 계약이 체결됐지만 이달부터는 최소 5억3000만원 이상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 단지는 2569가구로 구성돼 있다.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을 주로 중개하는 K공인 중개사는 “임대사업자 물건은 5억8000만원은 줘야 계약할 수 있다”며 “신축 아파트 입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가격 방어가 잘 돼고 있다”고 말했다.


대단지 새 아파트들이 ‘입주 효과’ 내지 '입주장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올 초부터 이들 지역의 전세가격 상승이 진행 중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양천구 아파트 전셋값은 올 초 이후 0.95% 올라 1%에 거의 다다랐다. 같은 기간 은평구와 강동구 전세가격은 각각 0.59%, 0.23% 뛰었다.

◆"집주인 70%가량 직접 거주하겠다"

대규모 입주물량에도 전셋값이 오르는 이유는 집주인들이 세를 놓지 않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 거주 요건 강화로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면서 매물이 줄었다. 수요자인 세입자들은 그대로인데, 전세로 나올 공급이 줄었으니 전셋값은 당연히 오른다는 얘기다.

고덕동 T공인 대표는 “과거엔 조정대상지역 내 1가구 1주택은 민간임대주택 등록 시 양도세를 내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2년을 거주해야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고덕 아르테온에선 소유주 70%가량이 세를 주지 않고 직접 거주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실제 전·월세 거래는 급속도로 주는 분위기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동구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1239건에서 올해 1월 796건으로 줄더니 3월에는 258건을 기록했다. 아직 미반영된 이달 거래량을 감안하더라도 거래 절벽은 뚜렷하게 감지된다. 양천구와 은평구의 전·월세 거래도 끊겼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각각 78.2%와 64.3% 감소했다.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할 사람들은 걱정 뿐이다. 대단지 신규 아파트의 경우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저렴했다. 대출 없이 매매가 어려워진 이들이나 자금력이 부족한 젊은 부부들이 많이 찾곤했다. 그러나 양도세 감면 거주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세입자들이 갈곳이 줄었다. 최근 30대들이 서울 외곽에서 구축 아파트라도 매입하는 게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덕 아르테온 전용 59㎡ 전세를 알아보고 있는 회사원 양 모씨(35)는 “집값은 많이 오르고 매매하려고 해도 대출도 안나오는데 전세로 들어갈 집도 많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앞으로 전세가가 더 오를 것 같아 현재 자금 여력보다 몇천만원 더 무리해서라도 집을 구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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