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에 분열된 EU…獨 "유로채권 발행 반대"

입력 2020-03-26 08:05   수정 2020-04-2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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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기부양 수단을 놓고 회원국 간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공동채권을 발행할 지 여부를 놓고 재정 여력이 탄탄한 독일 등 북부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남부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EU 회원국 27개 정상들은 26일(현지시간) 오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화상회의를 개최한다. 이날 정상회의에선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대책에 이은 추가 경기부양 대책이 확정될 예정이다. 논의되는 경기부양 대책은 유로안정화기금(ESM) 구제기금 사용과 유로존 공동채권인 이른바 ‘코로나채권’ 발행 등 두 가지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8일 7500억유로(1000조원)를 추가로 투입해 연말까지 국채와 회사채를 매입하겠다는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 중인 월 200억유로(26조원)의 채권매입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유럽 각국 정부도 수천억 유로 규모의 대출보증 및 직접지원 등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충격에 대응하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EU 회원국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23일 미 국채와 준정부기관이 발행한 주택담보증권(MBS), 상업용부동산담보증권(CMBS)을 제한 없이 매입하겠다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고, 7000억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와 1조달러 규모의 기업어음(CP) 매입 방침에 이은 후속 대책이다.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가 추가 지원을 먼저 요청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전례가 없는 세계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정책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며 “ESM이 보유한 5000억유로의 구제기금을 최대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울로 젠틸리니 EU 경제담당 집행위원도 “지금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비상사태”라며 “ESM 구제기금이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ESM는 2012년 출범한 EU의 상설 구제금융기구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자본금을 출연했다. 2011년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회원국의 구제금융에 대응할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출범했다. 총 기금규모는 5000억유로(약 666조원)다. 재정·금융위기가 우려되는 회원국 정부을 대상으로 대출 및 국채매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당 국가의 은행 등에 대한 직접지원뿐 아니라 회사채 매입도 가능하다.

ESM의 구제기금이 사용되려면 자본금을 출연한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관건은 지분율이 가장 높은 EU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다. ESM 자본금은 ECB 지분율에 비례해 출자됐다. 당초 독일은 ESM 구제기금 활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유럽 전역에서 확산되면서 독일도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현지 주간 슈피겔의 보도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상황에서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EU에서 세 번째로 경제규모가 큰 이탈리아 경제가 무너지면 유럽 전역으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상회의에서 논의되는 두 번째 경기부양 수단은 유로존 공동의 유로 코로나채권 발행이다. 유로존의 통화정책은 ECB가 맡지만 재정정책은 회원국이 독자 운영한다. 국채도 회원국이 독자 발행한다. 이렇다보니 EU 회원국 사이에서도 경제가 탄탄한 독일 등 북유럽 국가와 재정상태가 취약한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와의 국채금리 차이가 크다.

EU에선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때부터 회원국이 공동 발행하는 유로채권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유로존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지급보증을 한 우량채권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유럽 국가들은 지금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유로화 현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독일 등 북유럽 국가는 자체적으로 국채를 발행할 때보다 자금조달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재정여력이 탄탄한 북유럽 국가들이 유로채권 도입을 거세게 반대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 국가는 재정상태가 취약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재정지출 축소를 위한 개혁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유로채권 발행만 요구한다고 비판해 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로채권은 일부 국가의 도덕적 해이와 독일 등 우량국의 신용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유로채권 발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회원국 사이에서 제기됐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EU 9개 회원국 정부는 일시적인 유로채권 발행을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25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보냈다. 이들 국가는 “유로채권 발행은 EU의 효과적이고 단결된 대응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사진)도 지난 24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ESM의 구제기금을 사용하고 난 후 일회성으로 코로나 유로채권의 발행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ECB가 회원국에 유동성을 하루빨리 공급하기 위해 유로채권이 발행되는 즉시 대거 매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관건은 독일 등 북유럽 국가의 반발이다. 독일은 ESM 구제기금 사용에선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유로채권 발행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4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도 독일과 네덜란드 등이 유로채권 발행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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