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지옥 다녀온 주가에…"재개발 주택 팔아 주식 사자"

입력 2020-03-26 10:06   수정 2020-03-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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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계약금만이라도 받아서 주식을 사겠다네요.”

26일 경기 광명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급매로 재개발주택을 내놓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자산을 부동산에 묻어뒀던 투자자들이 앞다퉈 현금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연일 출렁이면서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영향이다.

◆목돈 마련해 주식시장으로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매물이 말랐던 서울과 수도권 재개발시장에 급매물이 늘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저점 매수를 노리는 투자자들이 ‘실탄’ 확보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은 잇따른 규제로 하방 압력을 받는 반면 낙폭이 큰 주식은 반등에 따른 단기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광명뉴타운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규모가 가장 큰 광명11구역의 재개발 물건 프리미엄이 최근 2억60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급매물이 증가하면서 연초보다 4000만원가량 내렸다. A공인 관계자는 “빠르게 현금화를 원하는 집주인들이 증가한 영향”이라며 “주가가 금융위기 때만큼 주저앉자 주식시장에 투자할 자금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재개발 물건 소유주들의 경우 대부분 살고 있는 집을 따로 둔 투자자들”이라며 “양도소득세가 중과돼도 개의치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일선 중개업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1~2주 들어 본격화됐다. 종합주가지수 1500선이 10년 8개월 만에 붕괴되던 시점이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집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최근 성남 상대원2구역에서 이틀 만에 급매 물건을 거래한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도인이 매각대금을 재투자에 활용하기 위해 시세보다 낮게 가격을 불렀다”며 “통상 잔금을 치르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2~3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계약금의 일부를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연초 가격이 오르면서 잠겼던 매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성동구 B공인 관계자는 “부동산시장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도 매각 결정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전역의 재개발구역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C중개법인 대표는 “부동산을 다루는 만큼 주식투자를 금기시했지만 고객들의 상담이 잦아져 소액이라도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개발이 매각 1순위”

재개발구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 건 일반 아파트나 재건축 단지에 비해 투자자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보니 1주택자보단 다주택자들이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직접 입주해 살 집이 아닌 만큼 현금 확보를 위해 재개발물건을 최우선 매각 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과 비교하면 조합원지위 양도 조건도 덜 까다롭다.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 이후엔 지위양도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업 지연 또는 장기 거주 등의 요건을 충족했을 때만 조합원 자격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재개발은 투기과열지구에 있더라도 관리처분계획인가 전이라면 얼마든 거래할 수 있다. 이마저도 2018년 1월24일 이전 최초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구역일 경우엔 양도 제한이 아예 없다. 김종철 광명 백억공인 대표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아 주택이 입주권으로 전환된 뒤 매각할 경우 양도세가 중과되지 않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가능하다”며 “막바지 단계 사업장에선 거래가 더욱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급매가 늘어나는 분위기에 군침을 흘리는 투자자들도 많다. 역으로 주식이 아닌 부동산을 싼값에 취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 재개발 전문 투자자는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들어 경기 충격이 진정되면 가격이 반등할 것으로 판단돼 추가 매수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당부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금융과 실물의 복합위기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할 경우 부동산시장 또한 영향을 피할 수 없다”며 “이 경우 회복세는 가파르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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