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대응책인 유로존 공동채권 발행 등을 두고 분열됐다. 가난한 남부 회원국과 부유한 북부 회원국으로 갈라졌던 유로본드와 유사한 양상이다.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26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조율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EU 정상들의 경제 대응책 초안이 너무 약하다며 거부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전쟁에 맞는 획기적인 재정 수단"을 사용하는 "강하고 충분한" 재정 대응을 원한다면서 EU 정상회의와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에 적절한 해법을 내놓는 데 10일을 주겠다고 밝혔다. 스페인도 이를 지지했다.
소위 '코로나 채권'으로 불리는 공동 채권 발행 방안은 2010년 유로존 재정 위기를 계기로 제기된 '유로본드'와 유사한 구상이다. 재정이 취약한 회원국은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 경제적 압박을 줄이고 병원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유로본드는 회원국들의 재정 리스크 분담을 위해 회원국 공동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각 회원국이 공동 지급 보증하는 방식 등이 제안됐으나 회원국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를 비롯한 9개 국가 정상들은 전날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공동채권 발행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최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 화상회의에서 유로존 정부들의 공동채권 발행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유로본드에도 반대해왔던 독일과 네덜란드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은 공동 채권 발행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상 가난한 회원국의 경제적 부담을 부유한 회원국이 분담하는 형태인 만큼, 이들 국가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신용도 하락 등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EU 정상들은 이날 6시간에 걸친 논쟁 끝에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강력한 경제 대응책을 내놓기 위한 2주간의 시간을 주기로 합의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쳤다. 공동 채권 발행을 둘러싼 논쟁은 부유한 북부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부채율이 높은 남부 회원국 간 해묵은 갈등을 다시금 촉발해 유로존 내 협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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