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공간에 동승적 안전 규정 적용
흔히 자율주행 이동 수단의 미래를 얘기할 때 걸림돌로 여겨지는 항목은 크게 소비자 인식, 제품에 대한 규제, 그리고 도로 조건 등이 꼽힌다. 제아무리 기술이 앞서가도 이들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용화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세 가지 중에 소비자 인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정부의 몫이다. 운전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이동 수단의 판매를 정부가 허가해야 하고, 관련 도로의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운행되면서 소비자 인식도 달라지게 된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관련 규정의 도입이 조기 도입이 검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일단 제품 규정을 손보기 위해 나섰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자율주행 이동 수단임에도 반드시 넣으라고 규정했던 수동 조종 시스템, 즉 스티어링 휠과 가감속 페달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현재의 운전석이 동승석과 같은 개념으로 규정되는 것인 만큼 안전규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내 자동차 기준에 따르면 스티어링 휠과 가감속 페달이 있는 차는 운전석에 모두 11가지의 안전 규정이 적용돼 있다. 하지만 자율주행 이동 수단은 운전석이 단순한 승차석으로 바뀌는 만큼 동일 기준을 적용하기 쉽지 않거나 불필요한 걸림돌로 오히려 인공지능 이동 수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좌석의 구분 개념이다. 운전석에서 '운전'의 기능이 사라지면 더 이상 '운전석'을 규정할 이유가 없어서다. 따라서 운전석 탑승보호 요건을 동승석과 동일하게 부여할 필요가 생겼고, 이동 수단이 단순한 배달용이라면 오히려 사람을 보호할 안전기준이 필요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상식적으로도 배달용이라면 사람을 보호할 에어백과 안전띠가 없어도 되고, 눈부심을 방지할 선바이저는 물론 아예 좌석이 없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이동 수단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동이 필요한 대상의 성격, 즉 사람과 화물만 구분할 뿐 운전자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물론 당장 미국 정부가 규정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련 기업 의견을 접수하기 시작했고, 이미 자율주행 이동 수단의 누적 시험 주행거리가 지구 400바퀴 거리를 넘은 만큼 규정의 재정비는 선제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글로벌 자동차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으로선 중국이 배터리 전기차를 집중적으로 밀고 나갈 때 자율주행 이동 수단의 지능 고도화로 격차를 벌리는 식이다. 어차피 배터리 전기차는 각 나라마다 에너지 상황이 다르고 필요하면 언제든 늘릴 수 있는 선택적 문제에 불과한 만큼 지능의 격차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율주행 이동 수단은 활용 범위가 사람 및 화물 이동 뿐 아니라 군수, 항공 등 움직이는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한 만큼 이동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는 쪽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미국이 이동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이동의 우월'이 곧 지배의 힘으로 작용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 인류는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이동의 속도와 기능 경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속도를 위해 두 발 대신 말(馬)을 길들여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고, 이후 내연기관 이동 수단으로 오면서 '속도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그리고 편안하게(사람), 나아가 기능적으로 우월한 이동 방법을 고민해 왔다는 점에서 이동은 곧 현대 산업 사회의 중요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당연히 모빌리티로 통칭되는 이동에 관해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시장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만들어 갈 정부 의지도 확고하다. 하지만 규제에 관해선 여전히 한 걸음 뒤진 것도 사실이다. 다른 나라들이 운전자 없는 이동 사업을 고민할 때 우리는 여전히 돈 받고 사람을 이동시켜 주는 유상운송의 해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차라리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의 유상운송 투입을 세계 최초로 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이용 여부는 소비자가 직접 판단할테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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