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카톡서 청소년 성착취물 보기만 해도 아청법 '음란물 소지죄'"

입력 2020-03-30 15:48   수정 2020-03-30 16:05


미성년자 음란물을 컴퓨터나 이동식저장장치(USB) 등에 따로 저장하지 않고 카카오톡을 통해 시청하기만 했더라도 아동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상 ‘음란물 소지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최근 나왔다. 텔레그램 ‘n번방’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음란물을 단순 시청만 한 자들도 같은 혐의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부장판사 정종관)는 지난 1월 아청법 위반(음란물 소지)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미성년자와 대화를 하던 중 상대방에게 음란 동영상을 촬영하게 한 후, 이를 시청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아청법에 따라 아동·청소년 음란물임을 알고도 이를 소지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앞서 1재판부는 A씨에게 이 같은 음란물 소지죄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해당 영상을 메시지로 받아 시청만 했을 뿐 휴대폰에 ‘저장’한 적이 없으므로 음란물 소지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는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 받는 과정에선 “동영상을 전송받은 받아본 그날 혹은 다음날에 바로 지우기도 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실조회 결과 해당 대화창을 통해 전송받은 동영상을 재생시켜 시청하면 이 동영상이 이용자의 휴대폰 앱 내부 디렉토리에 저장된다”며 “피고인이 음란물을 앱 내부 디렉토리에 저장하는 형태로 ‘소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소지의 개념에 특정한 보관기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며 “당일 또는 다음날 삭제했더라도 소지죄의 성부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텔레그램에는 대화방에 올라온 영상 등을 내부 디렉토리 등에 자동 저장하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n번방 단순 시청자에게 음란물 소지죄를 적용하기 위해 법리 검토에 나선 가운데, 이 같은 판례에 따를 경우 수만명으로 추산되는 단순 관전자들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만 수사기관은 피의자들이 해당 영상물이 아동·청소년 음란물이었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A씨의 경우 미성년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영상물을 받았기에 ‘사전 인지’ 여부에 논란이 없었다. n번방 유료회원 등도 수십만원 상당의 돈까지 지불한 만큼, 해당 영상물이 미성년자 성착취물임을 알고서 시청(소지)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진 않을 전망이다.

다만 ‘맛보기’ 방의 단순 시청자의 경우 “미성년자 음란물인지 모르고 재생했다”고 항변한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또한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 음란물만 시청했다면 아청법상 음란물 소지죄를 적용할 수 없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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