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문 대통령 "4·3 특별법 개정, 특별한 관심과 지원 당부"

입력 2020-04-03 11:32   수정 2020-04-03 11:34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제72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4·3특별법 개정'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고 신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의 4·3희생자 추념식 참석은 이번이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두 차례 추념식에 참석한 것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추념사를 통해 "4·3의 해결은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에 따라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치유해 나가는 '정의와 화해'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4·3이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만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시행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에 대한 기술이 더욱 많아지고 상세해졌다"면서 "4·3의 진실과 슬픔, 화해와 상생의 노력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져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실의 바탕 위에서 4·3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과 삶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국가의 책무"라면서 "4·3의 완전한 해결의 기반이 되는 배상과 보상 문제를 포함한 '4·3특별법 개정'이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치권과 국회에도 4·3특별법 개정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한다"면서 입법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속하게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추념식은 제주시 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 참석자를 150명 가량으로 최소했다. 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4·3희생자유족회장 등 유족 60여명, 4·3평화재단 이사장, 4·3실무위원회, 제주 지역사회 대표 등 유관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전문이다.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4·3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4·3은 제주의 깊은 슬픔입니다. 제주만의 슬픔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아픔입니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오직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으며 되찾은 나라를 온전히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고, 통일 정부 수립이라는 간절한 요구는 이념의 덫으로 돌아와 우리를 분열시켰습니다.

우리가 지금도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화해하고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주의 슬픔에 동참해야 합니다.

제주 4·3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날, 그 학살의 현장에서 무엇이 날조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굴레를 씌우고, 또 무엇이 제주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현대사를 다시 시작할 때 제주의 아픔은 진정으로 치유되고, 지난 72년, 우리를 괴롭혀왔던 반목과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동백꽃처럼 쓰러져간 제주가 평화를 완성하는 제주로 부활하길 희망합니다. 희생자들이 남긴 인권과 화해, 통합의 가치를 가슴 깊이 새깁니다.

국가폭력과 이념에 희생된 4·3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오늘의 제주를 일궈내신 유가족들과 제주도민들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우리는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하는 매우 엄중하고 힘든 시기에 다시 4·3을 맞이했습니다. ‘연대와 협력’의 힘을 절실하게 느끼며 그 힘이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4·3은 왜곡되고 외면당하면서도 끊임없이 화해와 치유의 길을 열었습니다. 2013년, 4·3희생자 유족회와 제주 경우회가 화해를 선언하고, 매년 충혼묘지와 4·3공원을 오가며 함께 참배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군과 경찰이 4·3 영령들 앞에 섰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도민들과 유가족들께 공식적으로 사과를 드렸고, 4·3의 명예회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동참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유가족들과 제주도민들도 화해와 상생의 손을 맞잡아주었습니다.

화해와 상생의 정신은 ‘코로나19’ 속에서도 도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제주는 “우리동네 우리가 지킨다”는 운동으로 43개 읍면동, 60개 단체가 2만7천여 곳에 달하는 다중 이용시설에서 방역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새마을부녀회와 자원봉사센터는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과 지역사회에 나눠주었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와 도연합청년회는 휴대용 손소독제를 직접 제조해 도민에게 배부했습니다.

도민들은 지역을 넘어 전국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 마스크를 비롯한 물품과 성금을 전달했고, 제주도민의 자율 방역활동은 서울, 경기, 인천, 나주와 부산, 울산 등 다른 지자체에서 보고 배울 만큼 민관협력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 연대와 협력의 힘을 앞장서 보여주신 제주도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4·3의 해결은 결코 정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웃의 아픔과 공감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태도의 문제입니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보편적 기준에 따라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치유해 나가는 ‘정의와 화해’의 길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4·3이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만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진실은 용서와 화해의 토대입니다. 진실은 이념의 적대가 낳은 상처를 치유하는 힘입니다.

올해 3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된 지 16년 만에 ‘추가진상보고서’ 제1권이 나왔습니다. 집단학살 사건, 수형인 행방불명과 예비검속, 희생자 유해발굴의 결과를 기록했고,
피해 상황도 마을별로 정리했습니다. 교육계와 학생들의 피해를 밝히고, 군인·경찰·우익단체의 피해도 정확하게 조사했습니다. 진실규명에 애써준 제주4·3평화재단과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시행되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에 대한 기술이 더욱 많아지고 상세해졌습니다. 4·3이 ‘국가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임을 명시하고, 진압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 수단이 동원되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제주도민들의 노력과 함께 화해와 상생의 정신까지 포함하고 있어 참으로 뜻깊습니다.

제주는 이제 외롭지 않습니다. 4·3의 진실과 슬픔, 화해와 상생의 노력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져 잊히지 않을 것이며, 4·3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는 미래 세대에게 인권과 생명, 평화와 통합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진실의 바탕 위에서 4·3 피해자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고 삶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진실은 정의를 만날 때 비로소 화해와 상생으로 연결됩니다. 진실을 역사적인 정의뿐 아니라
법적인 정의로도 구현해야 하는 것이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부당하게 희생당한 국민에 대한 구제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본질적 문제입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의 기반이 되는 배상과 보상 문제를 포함한 ‘4·3특별법 개정’이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제주 4·3은 개별 소송으로 일부 배상을 받거나, 정부의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받는 것에 머물고 있을 뿐 법에 의한 배·보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딘 발걸음에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4·3은 법적인 정의를 향해서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열여덟 분의 4·3생존 수형인들이 4·3 군사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제기한 재심재판과 형사보상 재판에서 모두 승소했고,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우리는 이제 죄 없는 사람이다”라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수형인 명부가 4·3 수형인들의 무죄를 말해주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그 분들 가운데 현창용, 김경인, 김순화, 송석진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국가는 아직 가장 중요한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국가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존희생자는 물론 1세대 유족도 일흔을 넘기고 있고,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목격자들도 고령인 상황에서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너무 오래 지연된 정의는 거부된 정의”라고 말했습니다.

해방에서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많은 아픈 과거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생존해 있을 때 기본적 정의로서의 실질적인 배상과 보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정치권과 국회에도 ‘4·3 특별법 개정’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합니다. 입법을 위한 노력과 함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속하게 해나가겠습니다.

정부는 2018년, 그동안 중단됐던 4·3희생자와 유족 추가신고사업을 재개했습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는 ‘6차 신고기간’ 동안 추가로 신고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심의를 거쳐, 희생자 90명, 유족 7,606명을 새롭게 인정했습니다. 특히, 부친의 희생 장면을 목격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아온 송정순 님을 4·3희생자 중 최초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희생자로 인정해 매우 뜻깊습니다.

앞으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신고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추가신고의 기회를 드리고, 희생자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유해발굴과 유전자 감식에 대한 지원도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올 4월부터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4·3트라우마센터’가 시범 운영됩니다. 제주도민들이 마음속 응어리와 멍에를 떨쳐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관련 법률이 입법화되면 국립 트라우마센터로 승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4·3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은 과거이면서 우리의 미래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은 4·3 그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날 제주가 꾸었던 꿈이 지금 우리의 꿈입니다.

동백꽃 지듯 슬픔은 계속되었지만 슬픔을 견뎠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아직은 슬픔을 잊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슬픔 속에서 제주가 꿈꾸었던 내일을 함께 열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부는 제주도민과 유가족, 국민과 함께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겠습니다.

4·3에서 시작된 진실과 정의, 화해의 이야기는 우리 후손들에게 슬픔 속에서 희망을 건져낸 감동의 역사로 남겨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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