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은 매월 두 차례 일요일 의무휴업을 준수해야 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 명목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의 의무휴업일에 구매를 포기하거나 같은 점포에서 다른 날 구매한다. 결국 소비자 불편만 가중시키고 내수 침체 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수혜자는 온라인 유통, 개인 대형슈퍼(식자재마트) 등이다. 의무휴업 규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014년 한 해 동안 8조원 규모로 추정됐다. 2017~2018년 신용카드 빅데이터 연구 결과에서도 규제의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휴업일에는 대형마트 주변에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 주변 상권도 동반 침체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인 G마켓, 옥션, G9은 모두 미국 이베이 계열이다. 쿠팡도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자본을 받은 사실상 외자 기업이다. 이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기업과 가격 경쟁을 하고 배송 경쟁을 벌이고 있다. 쿠팡은 2018년 영업손실이 약 1조1074억원인데도 2019년에 약 2조2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승자독식의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출점·영업규제 속에서 거대 공룡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대형마트는 존립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미 해외 직구를 위한 한국어 서비스와 무료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 아마존, 알리바바 등이 국내 시장에 본격 진입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에서는 토이저러스, 시어스 등 대표적인 소매기업을 비롯해 50여 개 유명 브랜드가 파산을 신청했고, 2017년 한 해 8053개 매장이 폐점했다.
대형마트도 온라인 판매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부 온라인 주문·배송 서비스를 하고는 있다. 그런데 의무휴업일 및 매장 영업시간 외(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시간대에는 온라인 서비스를 위한 활동도 일절 금지된다. 요즘 유행인 새벽배송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유통과 오프라인 유통은 전혀 다른 소매방식인데 의무휴업 및 영업시간 규제를 동시에 적용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해괴한 발상인가. 해외 직구와 온라인 전문 유통업체는 365일 24시간 돌아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사재기’ 없는 나라를 만든 것은 한국 유통업의 힘이었다. 온라인 유통업의 급성장, 대형마트 규제, 외자계 온라인 유통기업에 대한 대형마트의 역차별 등 삼중고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우리의 유통업은 점차 쇠락하고 말 것이다. 외자계 온라인 유통기업이 가격 경쟁 등을 위해 글로벌 소싱에 주력할 경우 국내 제조업 붕괴, 대·중·소 오프라인 소매업의 침체로 이어지고 고용, 부동산,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등에 대해서도 연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최근 경기침체의 근본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대면접촉 급감과 국내외 이동금지로 인한 소비 위축, 실물경제 위축이다. 내수 활성화 차원에서라도 의무휴업 규제와 의무휴업일 온라인 판매금지 규제부터 폐지해 유통업을 살려야 한다. 경북 안동시가 먼저 의무휴업일 규제와 온라인 판매금지 규제를 한시적으로 해제했다. 잘한 일이다. 다만 한시적 해제가 아니라 영구 해제가 맞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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