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망의 기로에 선 주력산업…산업부 장관은 어디에 있나

입력 2020-04-06 17:28   수정 2020-10-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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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하나 부도나면 그때서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대로 들여다볼까요?”

6일 기자와 통화한 한 정유업체 임원은 한숨부터 쉬었다. 정유업계가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도 주무부처인 산업부가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정유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다 유가 급락의 여파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몰려있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정유업과 석유화학업이 무너지면 항공업체 여행업체가 부도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지난 두 달간 산업부는 지원책은 고사하고 간담회조차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상의 충격”(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코로나19 사태에도 한국 산업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산업부의 역할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경제계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국내 제조업이 공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기업도산을 막고, 산업구조를 재편하며, 통상 협상을 통해 수출 시장을 점검해야 할 산업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성윤모 장관(사진)의 최근 일정을 보더라도 기업들의 이 같은 불만이 과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에서 신천지교회 관련 확진자가 처음 발생하며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이 본격 시작된 2월 18일 이후 지난달 말까지 성 장관의 일정은 국회 출석 13회, 정부 회의 참석 15회, 부처 행사 주관 5회 등으로 채워졌다. 이 기간에 기업체 관계자를 만난 것은 지난달 23일 자동차 부품업계와의 간담회가 유일했다.

성 장관의 소극적 행보에 대해 산업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도 한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사이 세계 선박 발주가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주요 대기업의 해외 공장은 사나흘이 멀다 하고 멈춰 서고 있다. 주요 법무법인이 “해고와 정리해고 관련 법률 자문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비 두 배 늘었다”고 할 정도로 일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산업부는 청와대와 정치권이 관심을 두는 사안에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마스크 공급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성 장관은 지난달 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마스크 생산업체와 소재업체를 방문했다. 16일에도 방문하려 했으나 “생산에 정신없는데 오면 도움이 안 된다”는 업체의 반대에 겸연쩍어하며 방문을 취소했다. 산업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산업부가 마스크부가 됐다” “산하에 마스크공사라도 설치해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마스크部' 푸념까지…산업부 공무원, 자부심도 근성도 사라졌다
정부 내 반기업 정서에 포위돼…기업 '대못 규제' 못막고 침묵


기업들은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희망을 놓은 지 제법 됐다고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018년부터 중앙부처 공무원을 만나러 세종시에 내려가도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 정도만 방문하고 산업부는 건너뛴다”고 말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기업의 어려움을 듣고 기업을 대변해 관련 부처와 협의하는 산업부 본연의 역할을 이제는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처럼 산업부가 ‘동면’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산업계와 세종시 안팎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정부 내 반기업 정서에 산업부가 포위됐다는 것이 첫 번째다. 산업부는 다른 규제 부처가 새로운 규제를 내놓는 등 기업과 산업을 공격할 때 이를 방어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공정경제’를 내세워 기업들을 압박하면서 입지가 크게 위축됐다. 국무회의 등에서 성윤모 장관의 발언은 다른 부처 장관들에 비해 확연히 적다는 전언이다. 과거 산업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성 장관이 온화한 스타일 때문에 각을 세우지 않는 것도 있지만, 애초에 산업부가 나서서 발언할 기회 자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실무 부서에서 준비하는 ‘회의 말씀자료’도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한다’가 아니라 ‘누가 뭐라고 말하면 이렇게 답한다’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정책 우선순위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 산업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청와대와 여권 등 정치적 필요에 따라 주력 정책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2018년 9월 성 장관 취임 이후 산업부가 목소리를 높인 분야는 소재·부품·장비 육성정책이 거의 유일하다. 일본과의 통상 분쟁 와중에 급조되면서 10년 전, 20년 전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 대책이 마련됐다. 마스크 수급 논란이 정치적 이슈로 번지며 성 장관이 관련 업체를 집중적으로 방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이 같은 요인들이 겹치며 산업부 공무원 특유의 야성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성 장관 취임 이후 잦아진 산업부 내 인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재부품총괄과장은 작년 12월 이후 두 차례나 바뀌었다. 기계로봇장비과는 지난해 이후 세 차례 과장이 교체됐다. 이렇다 보니 인사가 난 뒤 3개월을 채 못 채우고 다시 떠나는 과장도 있었다. “전문성을 갖고 제대로 일해보겠다기보다 소위 잘나가는 과에 한 번씩 몸담는 것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업계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고, 다른 부처의 규제까지 뚫어내야 하는 산업부 정책의 특성상 산업부 공무원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전문성과 적극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부에서 산업정책과장 등을 지낸 이창양 KAIST 경영대 교수는 “코로나19로 세계 산업이 타격받는 지금 산업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관계자들도 할 말은 많다고 한다. 산업부의 한 국장은 “산업부는 규제당국도 아니고 집행할 수 있는 자금도 제한적”이라며 “위기 때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가 하는 역할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노경목/송형석/구은서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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