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에서 보유세발(發) 충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선 고점 대비 7억원가량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매매됐다. 다음달까지 명의이전을 마쳐야 수천만원 급증한 세금을 물지 않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수세가 끊기면서 호가가 내리는 단지도 늘고 있다.
◆7억 낮춰 ‘절세 급매’
8일 반포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가 전날 26억8000만원에 팔렸다. 같은 면적대가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34억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7억2000만원 낮은 가격이다. A공인 관계자는 “5월까지 잔금을 치르고 집도 보여주지 않는 조건”이라면서 “급매로 나온 지 반나절 만에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시세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손바뀜이 이뤄진 건 보유세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는 매년 6월1일을 기준으로 납세의무가 성립된다. 매도인 입장에선 5월31일까지 잔금을 받거나 소유권이전등기가 신청되면 매수인에게 보유세 부담 의무를 넘길 수 있는 셈이다.
반포동 B공인 관계자는 “집주인이 강남에 주택 한 채가 더 있어 올해 납부할 보유세가 두 배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며 “임대사업자였지만 중도 매각에 대한 과태료를 감수하고 처분을 결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C공인 관계자는 “그동안 초급매를 기다리던 매수인이 시세보다 3억~4억 낮은 가격의 매물이 나오자 바로 계약했다”며 “대출이 나오지 않지만 전세를 끼고 있어 실제 투자금은 절반가량 줄어든다”고 전했다.
아크로리버파크는 국내 일반 아파트 가운데 가장 비싼 아파트다. 지난해부터 소형 면적대와 중형 면적대가 줄줄이 3.3㎡당(공급면적 기준) 1억원을 넘겨 거래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고가 아파트를 표적으로 공시가격을 급등시키면서 소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이 급증했다. 전용 84㎡ 중층 기준 공시가격은 지난해 19억원대에서 올해 25억원대로 35%가량 올랐다. 보유세는 다주택자일수록 세액이 급증하는 구조다. 이번에 거래한 매도인은 주택 숫자를 줄이면서 종전엔 4000만원대로 예정됐던 보유세를 10분의 1 수준인 400만원가량으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유세 시한폭탄 ‘째깍째깍’
보유세 공포가 한 단지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크로리버파크 인근 ‘반포힐스테이트’ 전용 84㎡도 최근 22억5000만원에 급매로 손바뀜이 이뤄졌다. 역시 6월 전에 잔금을 마치는 조건이다. 당초 매도인이 24억원에 내놨지만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가격을 더 낮추고서야 거래가 성사됐다.
아직 매수인을 구하지 못한 곳에서도 호가의 하향 조정이 이뤄지는 중이다. 과세기준일 전에 처분을 원하는 역삼동 ‘역삼래미안’ 전용 59㎡ 호가는 16억 중반대에서 14억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잠실의 중형 아파트를 내놓은 한 다주택자는 “단골 중개업소를 통해 거래를 하려다 도저히 계약서를 못 쓰게 될 것 같아 여러 곳에 집을 내놨다”면서 “고점 대비 호가를 2억 이상 낮췄는데도 연락이 없어 초조하다”고 말했다.
매수인이 짧은 시간 안에 잔금을 마련하기 빠듯할 경우 집주인이 아예 세입자로 들어가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때 매수인은 매매대금 일부를 보증금으로 갈음할 수 있어 자금융통의 부담이 적다. 일단 빠르게 명의를 변경하는 목적인 궁여지책인 셈이다.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과세기준일을 앞둔 시점에 이 같은 급매 거래가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급매가 소진된 뒤 하반기부터 반등하는 움직임이 최근 몇 년 동안 반복됐다. 올해의 경우 조정이 더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진행돼서다.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를 여럿 거래하는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평소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급매가 나왔다는 전화를 돌려도 떨어지는 걸 더 지켜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며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앞으로 반등은커녕 계약 자체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