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쇼크' 기업·자영업자 "비상금 쌓자"…은행 차입금 증가폭 '역대 최대'

입력 2020-04-08 12:00   수정 2020-04-0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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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자영업자(개인사업자)들이 지난달 은행에서 빌린 돈이 역대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확산되면서 비상자금 비축에 나선 결과다. 기업들은 비상금을 쌓는 한편 설비투자를 줄이는 등 현금 유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비상금 쌓는 기업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2020년 3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901조3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18조7000억원 늘었다. 지난달 기업 대출 증가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9년 6월 후 최대다.

▶본지 4월 1일자 A1면 참조

기업대출을 살펴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10조7000억원, 8조원 늘었다. 모두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된 자영업자 대출은 전달에 비해 3조8000억원 증가했다. 역시 최대로 늘었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되면서 심리가 위축된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늘어난 결과"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 체감심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한은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자료'를 보면 이달 전(全)산업의 업황 BSI는 전달에 비해 11포인트 내린 54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52)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달 하락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 이후 최대다. BSI는 기업의 경기 인식을 조사한 지표로 설문에서 부정적이라고 답한 곳이 긍정적이라고 본 업체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 체감경기가 나쁘다는 뜻이다.

체감심리가 나빠진 기업들은 설비투자도 줄이며 자금유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22일까지 시설투자와 유형자산 취득을 공시한 기업은 LG이노텍 호텔신라 등 25곳으로 투자금액은 2조1851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24개사가 공시한 투자금액(4조9291억원)에 비해 55.6% 줄었다.

◆꽉막힌 회사채 조달시장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부터 기업의 자금사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벌어들인 현금이 줄면서 차입금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예금, 주식, 펀드 등을 통해 운용하는 돈(운용자금)은 급격히 줄였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2019년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비금융법인(일반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72조9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4.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순자금조달 규모는 2011년(74조6000억원) 후 최대치다. 순자금조달은 빌린 돈(조달자금)에서 예금, 주식, 펀드 등을 통해 운용하는 돈(운용자금)을 뺀 금액이다. 이 금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체 자금 여력이 줄어들면서 빚이 늘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사 순이익은 38조7000억원으로 전년(82조3000억원)에 비해 52.9%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기업들의 운용자금 규모는 110조9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3.1% 감소했다. 지난해부터 자금사정이 팍팍해진 기업들이 코로나19 충격으로 은행 차입을 대폭 늘렸다는 평가다.

기업의 은행 차입이 불어난 것은 회사채 시장 위축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기업의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에서 상환액을 제외한 금액) -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업어음(CP) 순발행액은 -1조5000억원이었다. 코로나19로 자산운용사·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회사채 투자를 주저하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커진 결과다. 회사채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말 910조9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9조6000억원 불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4년 후 최대 증가폭이다.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신용대출, 주식담보대출 등)에서 각각 6조3000억원, 3조3000억원 늘었다. 기타대출 증가폭은 역대 최대다. 코로나19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자영업자의 신용대출 등이 늘면서 기타대출 증가폭이 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 관계자는 "부동산을 사들이기 위한 개인들의 신용대출이 늘어난 결과도 일부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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