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척과 차별조차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이뤄놓은 세계화가 정치, 문화, 과학, 종교 등 인류의 모든 활동이 복합적으로 일궈낸 성취임을 되새기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의 불씨를 댕긴 과학의 역할도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인간은 고대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후 범지구적 교역을 멈춘 일이 없다. 오스만 제국이 육상 교역로를 틀어쥐자, 15세기 유럽인들은 보다 자유로운 교역을 위해 위험천만한 해상 무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GPS(위성항법장치)를 비롯한 다양한 항법기술을 갖춘 오늘날과 달리, 당시 선박들은 전후좌우로 수평선만 펼쳐진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기 일쑤였음에도 말이다.
바다 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일은 18세기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1707년 영국 실리 제도 근처에서 4척의 함대가 암초에 부딪히는 대형 사고가 나자, 영국 정부는 급기야 이 문제를 푸는 데 최대 2만파운드(오늘날 50억원 정도)의 상금을 걸기에 이른다.
자전 탓에 측정이 어려웠던 경도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두 개의 좌표, 위도와 경도를 파악해야 한다. 다행히도 위도는-적어도 북반구에서는-북극성의 존재만으로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북극성과 관측자 사이의 일직선이 지표면 또는 해수면과 이루는 각도를 측정하면, 그 각도가 곧 위도다. 그렇지만 18세기 이전의 과학기술로 경도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죽하면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영생해야 누릴 수 있는 즐거움으로 영구기관과 만병통치약의 발명, 더불어 경도를 알아내는 일을 꼽았을까.
경도를 알아내기 어려운 이유는 지구가 1시간에 15도씩 회전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회전하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볼 수 있는 별들과 런던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이 다를 것이므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금방 내가 서울에 있는지 런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반면에 회전하는 지구상에서는 위도 차를 보정하고 나면 서울과 런던의 밤하늘에서 ‘시간 차이’를 두고 똑같은 별들이 같은 궤적을 훑고 지나간다. 경도 문제의 열쇠는 ‘무엇이 보이느냐’가 아니라 ‘언제 보이느냐’를 알아내는 데 있다. 기준점(런던 그리니치)과 나 사이의 시차를 알면 그 기준점으로부터 1시간에 15도씩 떨어진 내 위치를 계산해낼 수 있다.
당시에도 시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온도, 습도, 압력, 풍랑 등이 극심하게 변하는 배 위에서 수개월의 항해 기간 동안 틀어지지 않는 정교한 시계를 제작하지 못했다. 대신 우주를-한낱 인간이 만든 시계와 비교도 할 수 없는-신이 만든 정교한 기계라고 생각한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은 이 불가능한 문제의 답 역시 밤하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많은 과학자가 별들 사이를 가로질러 움직이며 시간에 따라 그 상대적 위치가 달라지는 천체, 즉 달에서 실마리를 찾았고, 18세기 들어 방대한 천문 데이터가 쌓이면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세상을 좁힌 존 해리슨의 '항법용 시계'
그러다가 이 문제는 존 해리슨이라는 천부적인 시계공의 등장으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결된다. 그는 40년에 걸쳐 네 번의 업데이트 끝에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경선의(항법용 시계)를 만들었다. 그가 1759년 제작한 H-4 모델은 무려 81일의 항해 기간 동안 단 5초밖에 틀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만든 시계’를 다루는 당대 천문과학자들은 경선의의 성공을 운으로 취급하며 인정하지 않았다. 해리슨이 약속된 2만파운드의 상금을 받기까지 수많은 분쟁이 있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그의 경선의가 가진 정밀도와 편리함은 그 어떤 편견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성공은 결국 정밀 항법의 시대로 이어져, 그 이후 200년간 세상은 점점 좁아졌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많은 나라가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뒤에도 폐쇄와 배척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려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국경의 테두리에 가두기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시대적 인식이 해리슨이라는 집요한 천재가 등장할 무대를 마련해줬고, 그의 등장으로 우리는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교역의 이익을 독식하기 위한 욕심이 식민지화 같은 어두운 면도 만들어냈지만, 이를 주의한다면 인간은 결국 다른 인간들과 협력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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