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만기 1년 미만 단기차입금(유동성 장기차입금 포함) 비중은 전체 차입금의 50%에 달한다. 미국은 10%대, 일본은 30%대 수준이다. 단기차입금 의존도가 높으면 자본시장이 일시적으로 마비될 경우 기업은 생사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전락한다. 무디스가 지난 6일 국내 증권사 여섯 곳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 검토’ 대상에 올릴 때도 이 점에 주목했다. 무디스는 “단기 자금조달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자금조달 구조 및 유동성 측면에서 취약성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기업 탓만 할 수도 없다. 국내 회사채시장의 기형적 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량 대기업 위주로만 회사채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소외된 기업들은 CP와 같은 단기자금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국내 공모 회사채 발행액(약 55조원) 가운데 투자부적격 신용등급(BB+ 이하) 회사채 발행은 전무했다. 중소기업들이 장기로 자금을 조달할 금융시스템 자체가 국내에 없다는 뜻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탄생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는 기업 위기의 원인으로 과도한 부채를 지목했다. 대기업그룹에 ‘부채비율 200% 이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까지 체질 변화를 압박했다. 하지만 차입금 만기 구조엔 주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제조업 평균 부채비율은 선진국 수준인 100% 안팎까지 낮아졌지만 단기차입금 의존도는 개선하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회사채시장 활성화 방안을 내놨지만 모두 헛발질이었다. 하이일드펀드는 공모주 우선배정 등 다른 혜택을 얻기 위한 도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2011년 문을 연 비우량채 전문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과감한 세제 혜택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은 못 내놓고 변죽만 올리다 긴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이런 자본시장 구조에서는 기업은 위기가 올 때마다 연쇄부도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엔 외환위기급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려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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