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에게 후원금을 정산하자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고….”
12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를 후원하는 한 스폰서 관계자가 전화 너머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KLPGA투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작도 못하고 있어서다. 미디어 노출 등의 홍보 효과는 포기한 지 오래다. 매출 급감 등 후원 기업들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모두가 ‘한 푼’이 아쉬운 상황. 이 관계자는 “계약에 따라 후원금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천재지변인 만큼 선수들도 고통 분담을 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다”고 했다.
“20여 개 출전 대회 기대했는데…”
기업들이 고심에 빠진 건 계약 조건 때문이다. 후원사는 대개 프로골퍼에게 ‘보장 후원액’을 제시한다. 일종의 ‘기본급’이다. 선수의 잠재력, 이름값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국내 여자프로 골퍼는 일반적으로 연 1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 이상까지 올라간다. 몇몇 해외 투어 세계 톱랭커는 연 15억원 이상을 제안받기도 한다. 성적에 연동되는 인센티브는 별도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우승의 경우 후원사별로 상이하지만 대개 우승 상금의 50~80%를 받는다. 톱5, 톱10 입상 시에도 별도의 인센티브가 따라온다”며 “승수가 많아지면 인센티브만 ‘수십억원’에 이를 수 있어 인센티브 ‘상한제’를 걸어놓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기본급의 전제 조건은 ‘최소 20개 이상 대회 출전’이 일반적이다. KLPGA투어가 한 시즌에 30여 개 대회를 연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 시즌의 3분의 2 수준이다. 그래야 후원액에 상응하는 미디어 노출 효과를 얻는다는 게 후원사들의 입장이다. 부상 등으로 선수가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등 변수에도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다. 일반적으로 전체 대회 수의 ‘60~80% 의무 출전’ 선에서 계약이 이뤄진다.
올해처럼 시즌 전체가 파행 운영되면 이 같은 계약은 후원사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6~7월까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열 수 있는 대회는 10~13개에 불과하다. 선수들은 기대치의 절반도 안 되는 대회를 뛰고도 계약금을 모두 챙길 수 있는 것이다. “차라리 시즌이 통째로 열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후원사들 사이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선수들 “우리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
선수들도 지금의 상황이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상금을 탈 기회가 사라졌고 인센티브는 더더욱 받지 못한다. 후원사 눈치도 봐야 하고,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하는 캐디, 트레이닝팀도 걱정해야 한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평소 인터뷰를 꺼리던 선수들도 최근에 먼저 인터뷰할 곳을 물어보고 있다”며 “(홍보 효과를 원했던) 후원사에 대해 느끼는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려는 것 같다. 선수들이 유튜브를 열심히 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톱 클래스’ 선수는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후원 기업과 계약을 조율할 협상력이 있어서다. 기업들도 톱 클래스 선수들에겐 섣불리 ‘고통 분담’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행여 관계가 틀어지면 계약 종료 후 선수가 새 후원사로 떠날 수도 있다.
기업의 고통 분담 요구는 중·하위권 선수들에게 자연스레 몰린다. 계약 조건 수정 요구 정도라면 다행이다. 중·하위권 선수들의 신규 후원 및 연장 계약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로 아예 자취를 감췄다. 한 후원사 관계자는 “경기가 재개되면 후원사 없이 ‘민모자’를 쓴 많은 1부 투어 선수를 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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