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시장 조성의 중심축인 연기금·공제회 등 출자자(LP)들이 일제히 벤처투자 리스크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벤처펀드들의 투자 대상인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이 대두되면서다.
10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국내 주요 LP들은 최근 이들로부터 자금을 위탁 받아 운용하고 있는 벤처캐피탈(VC)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펀드 운용 및 투자 기업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점검했다. 올해 본격적인 벤처펀드 출자를 앞두고 투자 자산의 리스크 요인 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다.
이같은 LP들의 움직임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벤처투자의 중심지인 미국과 중국 등에서 여행·공유오피스 등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감원에 들어가는 등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온라인쇼핑이나 교육, 물류 등 코로나19여파로 수혜를 보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고 VC들의 포트폴리오도 쏠림 없이 분산돼있어 펀드 운용 자체의 리스크는 크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코로나19가 실물 경기의 침체로 이어졌을 때 상장(IPO)등 회수 시장이 침체되고 벤처 기업에 대한 기존의 높은 밸류에이션이 무너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LP들의 행보에 VC들은 긴장하는 모양새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 산업은행 등 벤처투자시장에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기관들이 올해 벤처 펀드 조성에 2조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하며 정책자금 확보는 비교적 수월한 상황이지만 펀드 최종 결성을 위해 필요한 민간 자금 매칭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업계선 VC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에 직면한 민간 LP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운용사(GP)선정 역시 펀드 결성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대형 VC에 유리하게 이뤄질 것이란 분석이다. 한 VC관계자는 "이렇다할 트랙 레코드(투자 실적)이 부족한 중소형 또는 신생 운용사들은 모태펀드 등 정책자금을 앵커투자자로 유치하더라도 펀드 결성에 실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운용사 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응해 정부는 8일 모태펀드로부터 출자 받은 VC들이 목표 결성액의 70% 이상 자금이 모이면 우선 펀드를 결성해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패스트 클로징'(Fast Closing)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한국벤처투자와 한국성장금융, 산업은행 등이 중심이 돼 조성하는 모태펀드와 성장지원펀드의 결성 규모도 3조원에서 4조원으로 늘렸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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