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체면 구긴 '월가의 고수들'

입력 2020-04-13 18:25   수정 2020-04-14 00:13

코로나 쇼크로 글로벌 증시가 조정에 들어간 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미국 다우지수는 2월 24일부터 3월 23일까지 한 달간 속절없이 떨어져 1분기에만 33년 만에 분기 기준 최대 하락률(-23.2%)을 보였다. 1930년대 대공황, 1987년 블랙먼데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또 한 번 우울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루(스승)로 불리던 ‘월가 고수들’의 명성에도 흠집이 났다. ‘헤지펀드의 대부’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 리먼 사태 직전에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을 계기로 브리지워터를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사로 키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연초부터 증시 ‘상승’에 베팅하는 바람에 대표 펀드들이 1분기에 20% 안팎 손실을 봤다.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도 델타항공 탓에 구설에 올랐다. 미국 4대 항공사 주식을 모두 보유한 벅셔해서웨이는 1분기에만 항공주에서 50억달러(약 6조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버핏은 지난 2월 인터뷰에서 “당분간 팔 계획이 없다”고 밝힌 델타항공 주식을 3주 만인 지난달 초 3억1420만달러(약 3830억원)에 처분해 추종자들을 실망시켰다. ‘저평가된 주식을 장기 보유해 제 값에 판다’는 가치투자 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금융투자 업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벤 버냉키 전 미 중앙은행 의장도 체면을 구긴 인물이다. 지난달 25일 “매우 빠른 속도로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고 했다가 2주 만에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다.

증시 폭락이 고수들의 명성에 흠집을 낸 사례는 과거에도 적지 않았다. 계량경제학의 창시자인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는 1920년대 미국 증시 활황기에 처가 재산을 종잣돈으로 자산을 불려 투자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20년대 말 대공황이 터지기 직전 “주식시장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승을 예측했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

현 단계에서 월가 고수들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이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신(神)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심 탈레브가 《행운에 속지 마라》에서 지적한 대로 “성공적 투자의 대부분이 운에 기인한 것”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주식 투자의 필수덕목이 ‘겸손함’임을 코로나가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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