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유동성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매달 수조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가 도래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에 아직까지 증권사 ABCP 매입 지원은 포함되지 않아 증권사들이 자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단기자금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다수의 증권사들은 만기도래 ABCP를 갚을 새 ABCP를 시장에 팔지 못해 스스로 부동산대출채권 등 기초자산을 떠안아야 할 형편에 처해 있다. 쉽게 말해 ABCP 발행자금으로 부동산 시행사에 대규모 대출을 해줬다가, 대출 연장이 안돼 자기 돈으로 메워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는 얘기다.
최근 글로벌 증시 급락이 촉발한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파생상품 손실 등으로 유동성 압박이 심해진 상황에서 일부 증권사들은 단기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지금 추세로 코로나19 확산 악재가 계속 해소되지 못하면 대형 증권사도 버티기 어렵다"며 "정부의 선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금융당국은 증권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만큼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증권사들이 최근 수 년 간 부동산 PF 사업을 확대하면서 사상 최대 이익을 만끽했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은 7099억원, 미래에셋대우는 6637억원의 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증권사는 증권금융을 통해 4조6000억원 상당의 유동성을 받을 수 있고 한국은행을 통해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채권안정펀드를 노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최소한의 안전판은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동성 부족으로 대형 증권사가 자산을 투매하거나 중소형 증권사가 쓰러지면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역시 CP매입기구(CPFF)를 통해 단기 회사채를 직접 사들이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임원은 "과거 계열사 부실채권을 갖다 판 동양종금증권 같이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았고 PF대출 자체도 큰 문제가 없다"며 "투자손실이야 받아들여야겠지만 유동성 위기는 정부가 소방수로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앞으로 한 달 동안 ABCP 약 14조원어치가 만기를 맞는다.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전체 ABCP 기초자산의 약 40%가 부동산 관련 상품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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