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음료업체인 롯데칠성음료가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대표주관사를 다섯 곳이나 선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투자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우량 회사채조차 소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결정이다.
13일 롯데칠성에 따르면 회사는 오는 21일 15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를 대표주관사로 선정했다. 2012년 수요예측 제도 시행 이래 이번까지 총 열 차례의 회사채 발행 가운데 가장 많은 대표주관사 숫자다. 그동안 대표주관사는 한 곳 또는 두 곳이었다.
한 대표주관사 임원은 “코로나19 충격으로 회사채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물량 소화를 위해 이례적으로 많은 대표주관사를 선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관투자가들이 여전히 주식과 회사채를 모두 꺼리고 있다”며 “음료시장 40%를 점유하고 있는 롯데칠성처럼 우량한 신용을 갖춘 기업도 충분한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회사채 가격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회사채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는 롯데칠성과 같은 ‘AA’ 신용등급 기준 지난 10일 연 1.68%를 나타냈다. 지난달 9일 연 1.42%(3년물 기준)에서 한 달 동안 0.26%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국고채 금리가 연 1.02%에서 0.97%로 떨어진 것과 정반대 흐름이다. 기업의 부도 우려를 반영하는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의 격차, 즉 ‘신용스프레드’가 계속해서 가파른 확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들은 주로 회사채 모집금액 대비 수요가 부족할 때 더 많은 대표주관사 선정하려 한다. 각각의 증권사들이 다양한 고객 접점을 활용해 채권을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대한항공은 지난달 30일 6000억원 규모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등 일곱 곳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했다.
다만 LG그룹 계열사처럼 시장 분위기와 관계없이 대표주관사를 여럿 선정하는 기업도 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 2월 수요예측 사상 최대인 여덟 곳의 대표주관사를 선정했다. LG화학도 지난 2월 다섯 곳을 선정했다. LG그룹은 소수의 대형 증권사보다 다수의 증권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자금조달 안정성을 높이려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