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고려삼으로 불린 우리나라 산삼은 영약(靈藥)으로 꼽혔다. 그중에서도 사람 손길을 타지 않고 오래 자란 천종(天種) 산삼을 최상급으로 쳤다. 산삼을 채취할 땐 ‘캔다’는 말 대신 ‘돋운다’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귀해서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발견하기 어렵다.
《전통 심마니가 전하는 산삼 감정기법》의 저자 홍영선 씨는 “천둥마니에게는 온 산을 헤맨 끝에 우연히 발견되고, 둘째마니에게는 머릿속이 산삼으로 가득할 때 보이고, 어인마니에겐 아무 생각이 없을 때 비로소 산삼이 보인다”고 말한다. 옛날 임금에게 진상한 최상품은 ‘진’으로 지칭했고, 오래 묵어도 약이 되지 않는 삼은 ‘얼치기’라고 불렀다.
그는 ‘얼치기’를 설명할 때 초보자에게는 단순히 15년에서 25년 사이의 삼이라고 하고, 둘째마니에게는 지종(地種·중급) 산삼 이상의 씨앗이지만 어중간한 단계의 삼이라고 하며, 어인마니에게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절대 ‘진’이 되지 못하는 삼이라고 얘기한다.
얼치기는 사전적 의미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 이것저것이 조금씩 섞인 것을 일컫는다. 똑똑하지 못해 탐탁잖은 사람도 얼치기다. 사람 됨됨이가 변변치 못해 덜 된 행동을 하는 ‘얼간이’, 겨울에 땅을 대강 갈아엎어 심은 ‘얼갈이’ 역시 비슷한 말이다.
전통 심마니들은 얼치기를 ‘잡마니’라고도 부른다. 얼치기와 잡마니가 나대는 세상은 어지럽다. 눈 밝은 어인마니들은 ‘진’과 ‘얼치기’를 쉽게 구분하지만, 얼치기 잡마니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와 경제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 중 누가 ‘진’이고 ‘얼치기’인지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안목을 갖고 국가의 미래와 새로운 희망을 밝히는 유권자야말로 ‘진’이요, 오늘 투표소에서 “심봤다!”를 외칠 수 있는 어인마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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