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방영한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 등장하는 2025년 아침 뉴스의 한 장면이다. 재택근무 바람이 불었고, 이에 질린 사람들이 ‘출근하기 운동’까지 벌이게 됐다는 것이다. 새집을 마련한 할아버지는 온라인으로 집들이를 하고, 택배 배송은 드론이 맡는다. 주인공의 꿈은 자신의 지식(뇌)을 모두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트랜스휴먼’이 되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드라마 속 미래가 한발 더 가까워졌다.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아마존 주가가 사상 최고점을 찍은 것처럼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주연으로 떠오를 주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택근무의 일상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예상한 첫 번째 트렌드는 온라인 강의와 재택근무다. 재택근무의 가능성을 확인한 기업들은 회사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리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상장사 중에서는 삼성SDS가 기업들의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려 언제 어디서든 꺼내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준다. 이 회사 주가는 연초 대비 18% 하락한 상태지만 삼성그룹 계열사의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높은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재택근무를 위한 화상 회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알서포트의 주가는 연초 대비 두 배 올라 있다.
집을 사무실처럼 꾸미는 사람도 늘고 있다. 현대리바트는 올해 1분기 온라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고 발표했다. 책상 등 서재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했다. 한샘과 현대리바트 주가는 연초 대비 각각 8%, 48% 떨어진 상태다. 가구 1위 한샘 주가가 탄탄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수요가 뒷받침될 것이란 전망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주가 통째로 변한다
채소, 고기는 꼭 “눈으로 보고 사야 한다”던 주부들도 지금은 SSG닷컴 앱을 자연스럽게 연다. 주문버튼만 누르면 배우 공유가 거대한 트럭 속에서 생선을 잡고 우유를 짜기 시작하는 ‘쓱케일’ 광고는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 SSG닷컴의 강점은 신선식품이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에 최첨단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3호점 ‘NEO 003’를 열어 규모를 키우고 제시간에 배송해줄 인프라를 확충했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SSG닷컴이 큰 수혜를 봤다”고 설명했다. 올해 이마트는 지난해보다 64% 늘어난 2466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했다.
각종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늘어나면서 NHN한국사이버결제, CJ대한통운 같은 업체들의 전망도 밝다. 일찍이 ‘언택트 수혜주’로 꼽힌 NHN한국사이버결제는 연초 대비 주가가 55% 올랐고, CJ대한통운은 12% 하락했지만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외식을 줄이는 대신 식탁은 가정간편식(HMR)으로 채워졌다. CJ제일제당은 햇반, 비비고 만두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비비고 생선구이까지 판매량이 전달 대비 두 배(3월 기준)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연초 대비 4%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앞으로 식품 대장주 프리미엄을 누릴 것이란 분석이다.
어린아이를 둔 부부들은 외출 후 돌아와서 꼭 스타일러를 돌린다. 각종 바이러스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스타일러, 공기 청정기, 무선 청소기 등 ‘청정 가전’에 대한 관심으로 LG전자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소폭 늘어날 전망이다. LG전자 주가는 연초 대비 25% 하락해 있는 상태다. 이는 스마트폰 부진을 반영한 주가라고 봐야 한다.
다시 ‘안방극장’으로
영화관으로 몰려들었던 관객들은 ‘안방극장’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가 끝난 이후 이들이 영화관으로 걸음을 옮길지는 의문이다. 이화정 NH투자증권 연구원은 CJ CGV에 대해 “‘옥자’는 괜찮았지만, ‘사냥의 시간’은 위험하다”고 했다.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영화(사냥의 시간)까지 안방으로 직행한다면 영화관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올해에만 33편의 한류 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드래곤의 몸값도 올라가고 있다.
반도체는 이 모든 변화의 기반이 된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고 이동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세철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연구원은 지난 13일 SK하이닉스 1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67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는 “아마존 등 데이터센터 고객들의 투자 덕분에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제한적이었다”며 2분기에도 D램과 낸드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변동폭이 지나치게 큰 단기적인 ‘코로나19 테마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뉴노멀’에 걸맞은 주식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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