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AI·공격투자'…손정의 비전펀드 실패 3가지 이유

입력 2020-04-15 13:10   수정 2020-04-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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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통신회사에서 투자회사로'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야심차게 추진한 비전펀드가 운항 중단의 위기에 처했다. 2017년 1000억달러 규모로 출범한 비전펀드 1호가 지난해 1조8000억엔(약 20조3206억원)의 손실을 내자 2호 펀드도 출범이 늦어지게 됐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출자규모를 줄인데 이어 소프트뱅크그룹도 직접 펀드에 출자하려던 계획을 보류한다는 방침이다.

◆2년 만에 투자금 모두 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비전펀드가 막대한 손실을 낸 것은 손정의 회장 특유의 투자기법이 낳은 '3가지 지나침' 때문이라고 15일 분석했다.

첫번째 원인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성향이다. 2017년 출범 당시 비전펀드 1호는 투자기간을 5년으로 잡았다. 하지만 88개 기업에 펀드 투자금의 약 90%를 소진하는데 걸린 시간은 2년이었다. 최근 수 년은 유망 벤처기업의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VC업계의 대기자금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던 때였다. 투자속도를 늦추고 저가매수 기회를 엿보는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는 의미다. '일단 지르고 본' 비전펀드의 투자행태는 기존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1호펀드를 조기에 소진하고 1000억달러 규모의 2호펀드를 잇따라 투입해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급변한 시장환경에는 속수무책이었다. 1호 펀드 자금을 대부분 소진하고 2호 펀드 조성이 지지부진해진 결과 비전펀드는 향후 주가회복기에 우량기업을 선별할 기회도 잡기 어렵게 됐다.

공격적인 투자를 부추기는 펀드구조도 도마에 올랐다. 비전펀드는 외부 출자자들에게 매년 원리금의 7%를 우선배당한다. 초저금리 시대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큰손 투자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건 조건이었다. 이 때문에 매년 2800억엔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투자금 회수가 늦어질수록 비전펀드는 매년 배당금을 지급하느라 허덕대야 한다.

◆AI기업 투자한다면서 'AI 활용할 기업'도 투자

비전펀드가 실패한 두번째 이유는 인공지능(AI) 기업의 정의를 지나치게 넓힌 것이다. 당초 비전펀드의 투자대상은 'AI 기술을 실제로 보유한 기업'이었지만 곧 'AI를 활용하면 가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는 기업'으로 범위를 넓혔다. 전세계 경제가 추락하면서 AI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리게 됐다는 점에서 'AI기업'의 정의를 넒힌 건 독이 됐다.

비전펀드1호의 대표적인 투자회사인 위워크는 AI를 활용한 사무실 공유를 사업모델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임대업의 업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실패 이유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이다. 비전펀드의 자금을 받은 유니콘 기업들은 이미 투자 당시부터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시장상황이 급변하자 가뜩이나 고평가됐던 투자기업들의 가치하락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진입시점도 '꼭지'였다. 2014년 하나둘씩 등장한 유니콘기업이 2015년에는 전세계적으로 100개가 넘었다. 비전펀드1호가 출범한 2017년은 업력이 긴 VC뿐 아니라 헤지펀드나 일반 회사도 유니콘 투자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적정가격보다 비싼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시장환경이었다.

비전펀드는 당분간 투자금 회수에도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코로나19발 경기추락의 여파로 투자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상장(IPO)은 지연되고 있어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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