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1대 총선거에서도 북풍이 불었다. 투표 하루 전 북한은 순항 미사일을 여러 발 쏘아댔고 전투기도 띄웠다. 선거 때 단골답다. 하지만 북풍의 영향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북풍은 무시 못 할 변수였다. 보수 쪽에 도움되는 경우가 많았고, ‘기획설’ ‘음모론’이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2000년 4월, 16대 총선 사흘 전 당시 김대중 정부는 ‘6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으나 야당(한나라당)에 졌다. 2010년 3월,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으나 결과는 야당(민주당)의 승리였다. 2016년에도 20대 총선 닷새 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탈북’ 발표가 있었지만 야당(더불어민주당)이 1석 차로 이겼다.
유권자들이 북풍에 무덤덤해진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도 ‘도발 불감증’의 한 단면일까. 아니면 핵과 미사일을 내세운 북한의 도발이 일상화되면서 우리 사회가 단순히 ‘안보 피로증’에 젖었는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걱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안보’는 뒷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부 태도다. 그제 오전 7시에 일어난 미사일 도발을 국방부는 오후에야 공개했다.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당에 불리할까 봐 그랬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북풍 효과가 제한적이라면 북한은 어떻게 여길까. 한국 정치판에 대해 논평과 훈수를 주저하지 않는 북한으로선 쓸 만한 카드 하나가 없어지는 것일 수 있다. 이번 ‘미사일 북풍’은 총선 국면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겠지만 북한 내부 사정도 만만찮을 것이다. 오랜 제재로 팍팍해진 경제는 ‘코로나 단절’로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까지 들리는 걸 보면 긴장 조성을 통한 내부결속과 체제단속 필요성도 커졌을 수 있다.
미사일 도발조차 선거철 바람 정도로만 여기다가는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회성 북풍으로 보기에는 도발 수위도 높다. 경제 살리기가 시급하지만 핵무기 위협 제거 또한 당면 과제다. 21대 국회가 북풍을 원천 제거할 수 있을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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