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은 긴밀한 소통과 협력으로 함께 21대 국회의 개원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더불어시민당과 함께 개최한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과의) 연합정당”이라며 “민주당은 연합정당에 참여한 소수정당에 항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다른 정당과의 협력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연합정당 참여’를 일종의 기준으로 삼은 듯했다. 더불어시민당은 원외정당과 시민단체가 모이긴 했지만 연합정당이라기보다 민주당이 비례대표 선거를 위해 급조한 위성정당이다. 사실상 한몸인 정당과의 협력만을 강조한 것이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야당과의 협력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경제비상시국이다. 국회가 꼭 해야 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것을 야당에 부탁드린다”고 했다. 마치 여당은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데 야당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듯한 발언이었다. 4·15 총선 직후 각계에서 터져나오는 협치의 여망은 이날 민주당 지도부 발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총 300석 중 180석(더불어시민당 포함)을 가져갔다. 전체 의석의 60%를 넘어서는 거대 정당이 총선을 통해 탄생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개헌만 빼면 사실상 모든 국회 안건을 단독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여당의 독주에 대한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여당이 선거전과는 다른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선거에서 유일한 목표는 승리다. 이 때문에 선거전에서는 경쟁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거나 공존을 모색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은 단선적이다. 지지자들을 결집하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제로섬게임’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긴 정당(지도자)은 본질적으로 다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을 반대한 유권자의 뜻을 살펴야 하고 경쟁 정당(지도자)과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게임의 성격이 ‘논(non)제로섬게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0)가 되는 제로섬게임보다 훨씬 어렵고 고차원적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많은 지도자가 국민 앞에 비슷한 다짐을 내놓지만 현실에서 잘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격분시킨 말과 행동의 관성을 선거 후 갑자기 중단하기는 어렵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을 거둬들이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야당과의 협력이 장기적으로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냐에 대한 불안이 크다. 혹여 재기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는 적극 지지층의 만류 역시 부담스럽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제로섬게임을 지속했을 때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장부승 일본 관서외대 교수는 “집권세력에 가장 위험한 길은 승리에 도취해 급진화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권을 설득할 수 있는 의제를 개발해야 한다”며 “대북정책, 외교·안보정책, 경제정책 등에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총선 승리를 기존 정부정책에 대한 지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3 대 미래통합당 84로, 민주당이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지역구 득표율을 보면 민주당이 전체의 49.9%, 통합당이 41.5%로 8.4%포인트 차에 불과하다. ‘승자 독식형’ 선거제도가 낳은 결과물이다. 민주당이 자신의 지역구 의석수 비율처럼 국민 64%의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입장문에서 “국민이 기적 같은 투표율을 기록해주셨다. 큰 목소리에 가려져 있던 진정한 민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야당은 목소리만 크고, 진정한 민심은 여당에 있다’는 오만함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해단식에서 “독일의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열정과 책임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빠뜨린 것이 있다. 막스 베버는 ‘균형감각’도 주요 덕목으로 강조했다. 여당이 21대 국회에서 균형감각을 잃고 넘어지는 순간 ‘180석’의 무게는 여당을 짓누를 것이다.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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