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입소자들이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데다 요양원 특성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건당국과 요양원측이 입소자들의 치료를 방치한 데 이어 피해상황을 은폐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이 최근 각국 정부의 통계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8일부터 이달 8일까지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아일랜드, 벨기에 등 5개국의 코로나19 사망자 중 절반 가량이 요양원 입소자였다.
미국에 이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스페인은 한 달 새 발생한 사망자 중 57%가 요양원에서 나왔다. 이어 △아일랜드 (54%) △이탈리아·프랑스 (45%) △벨기에(42%) 순이었다.
문제는 각국 정부가 여전히 요양원 사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양원이 보건당국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각국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수치에 비해 피해규모가 더 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요양원 사망자 수를 공식 수치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4일 미국 전역 요양시설에서 입소자와 직원 등 최소 2만10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최소 3800여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지방정부와 요양시설에 의해 공식 확인된 수치만 집계한 것이다. 상당수 요양시설 등이 정보 제공을 꺼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제 요양원의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NYT의 설명이다.
영국은 요양원 사망자 집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18일(현지시간) 기준 영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1만5464명이지만, 이는 병원에서 기록된 사망자에 국한된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요양원의 사망자는 217명이다. 하지만 영국의 전국 요양원 대표기구인 케어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요양원 내 사망자가 7500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요양원 입소자에 대한 진단검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것인지에 대한 확인조차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요양원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은 우선 요양원의 구조적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양원 입소자들은 대부분 노약자인데다 기저질환을 갖고 있다. 입소자 한 명당 배정된 의료인력 및 간병인도 일반 병원에 비해 훨씬 부족하다. 더욱이 입소자는 간병인의 부축 등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입소자뿐 아니라 간병인들도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보건당국과 요양원측이 입소자에 대한 치료를 방치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안사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검찰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컸던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에 있는 요양시설 및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직무유기 혐의 등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롬바르디아주에서만 이탈리아 전체 사망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1만1000여명의 사망자가 속출한 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 검찰은 병상 과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코로나19 환자를 요양원으로 이송해달라는 롬바르디아주 정부의 방침이 요양원 내 감염 확산을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요양원측이 중증환자를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방치했는지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스페인 정부도 지난달 요양원에서 노약자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쏟아진 것과 관련 특별 조사에 착수했다.
앤드루 쿠오모 미국 뉴욕주 주지사는 요양시설 내 감염과 사망자 등에 관한 정보를 입소자의 가족과 친지에게 제공하는 행정명령을 약속했다. 뉴욕주는 주 내 613개 요양원에 대한 정보를 자료 검증이 끝나는 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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