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석유 거상 'OK림'의 몰락

싱가포르 석유거래업체 힌렁트레이딩이 대규모 손실을 낸 끝에 법원에 채무 유예 신청을 냈다. 담보로 잡혔던 원유마저 대부분 팔아치운 상태여서 HSBC 등 채권단이 대규모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한때 싱가포르 20대 부호 안에 들었던 창업자 임언쿠인은 "회계 부정은 모두 내가 시킨 것"이라고 실토했다.



로이터·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힌렁은 지난 17일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이 회사는 23개 채권단에 진 38억5000만달러의 채무를 6개월 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석유 수요 감소와 유가 폭락을 버티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제시했다.

힌렁의 창업자로 해운업계에서 'OK림'으로 통하는 임언쿠인은 법정에 제출한 서류에서 그동안의 비행을 시인했다. 힌렁은 지난해 10월 결산(2018~2019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 순이익 7820만달러를 냈으며 45조6000만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표기했다. 하지만 이번에 법원에 제출한 신청서에는 4월초 기준 채무는 40억5000만달러로 불어났고 순자산은 7억1400만달러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3억달러 이상이 비는 것이다.

힌렁 측은 또 감사보고서에 12억8000만달러로 표시했던 재고자산은 1억4100만달러어치만 남아있고, 4억6100만달러의 현금도 5000만달러로 줄었다고 했다. OK림은 "힌렁이 최근 몇 년간 수익을 내지 못했고, 수년에 걸쳐 원유 선물 거래에서 8억달러의 손실을 낸 것도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이런 손실을 숨기라고 재경 부서에 지시했고,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OK림의 아들인 에반 림은 자회사 해운업체 오션탱커스의 운영을 맡고 있다. 에반 림은 지난 17일 업무 관계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그동안 회사가 은행 대출의 담보로 제공했던 수백만 배럴의 석유 제품도 이미 처분했다"고 자백했다.

힌렁의 채권자 중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준 은행은 HSBC로 채권액이 6억달러에 달한다. ABN암로가 3억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싱가포르 은행인 DBS가 2억9000만달러, OCBC가 2억2000만달러, UOB가 1억달러 등을 빌려줬다.

올해 76세인 OK림은 1963년 트럭 한 대로 경유 배달 사업을 하는 힌렁을 설립해 싱가포르 최대 석유거래업체로 키워냈다. 자회사인 오션탱커는 130여척의 유조선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유조선사 중 하나다. 싱가포르 최대 선박유 공급업체인 오션벙커링서비스도 힌렁 소속이다. 힌렁은 아시아 최대 석유 저장 창고인 주롱섬의 유니버설터미널을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차이나와 공동 소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법원은 힌렁의 보호 신청을 30일 동안 검토한 위 상환 연장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심사 기간 동안에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