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원유 가격이 마이너스(-) 40달러까지 떨어지는 역사상 유례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1배럴의 원유를 사서 가져가면, 되레 40달러를 주겠다는 의미다. 수요가 완전히 실종되면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37달러'라는 수치 자체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장중 최저치는 -40.32달러였다.
유가는 개장 직후 급락하기 시작해 10달러선이 무너졌고 오후 들어서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장마감 직전 -10달러대였던 유가는 순식간에 밀려나며 -37달러에서 장을 마쳤다.
업계에선 정상적인 거래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최근 유가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선물만기 효과가 겹치면서 기현상이 벌어졌다는 분석이다.
상품선물 계약의 경우 만기가 지나면 실물을 인수해야 한다. 그러나 5월물 WTI 만기일(21일)을 앞두고 선물 투자자들이 실제 인수하기보다는 6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를 선택하면서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왜곡됐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재고가 넘치고 저장시설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일제히 원유 인수 시점을 늦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원유저장고를 포함해 바다 위의 유조선도 재고로 넘쳐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WTI는 주로 내륙 유전에서 생산되다보니, 저장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낙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재고는 지난주 2000만 배럴 가까이 늘었다. 1100만배럴 증가를 예상한 전문가들의 눈높이를 웃도는 수준이다.
'만기일 롤오버'라는 5월물 WTI의 일시적인 변수를 제외하면,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에 형성돼 있다. 21일부터 거래되는 6월물 WTI는 20일 오후 4시30분 현재 배럴당 21달러 선에 거래 중이다. 하루새 결제월이 바뀌면서 마이너스 유가가 20달러 선으로 급등하는 모양새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앞으로 유가 시장은 코로나19 흐름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5월물 WTI'가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은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마이너스 유가가 또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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