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中책임론'…현실적으로 중국에 책임 물을 수 있나[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04-22 09:41   수정 2020-04-22 16:58


중국을 향한 ‘코로나 책임론’이 심상찮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으로, 경제적으로 배상 하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주된 목소리는 미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 쪽 움직임도 주목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면에 서서 중국을 비난하는데 공화당 일각에서 동조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때리기를 병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 나라 최대 일간 신문 빌트가 앞장서더니, 곧 바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섰다.

메르켈의 중국 공격은 정계 기자회견 자리여서 주목 끌 만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파이낸셜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영국의 총리 대행인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도 중국과의 ‘외교관계 재조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앞서 영국의 한 싱크 탱크는 중국에서 비롯된 펜데믹이라고 전제하면서 G7(주요 7개국)이 입은 손해가 3조9600억 달러라는 계산까지 내놨다. 관심사는 앞으로 전개될 방향이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은, 국제사회는 중국에 이번 전염병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정치 공세 차원을 넘어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형태가 가능할까.

나타나는 양상만 보면, 정치·외교적 공세와 그 연장선상으로 볼 수도 있는 여론 비난, 국제기구에 청원, 법원에 소송 제기로 나뉜다. 법원 소송은 아직까지는 자국 법원을 통한 미국에서의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국제기구에 손해배상을 청원한 주체는 인도의 변호사단체다. 물론 중국에서 맞대응처럼 보이는 소송도 있지만, 다분히 수세적이다. 전망되는 가능한 시나리오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소를 제기하는 것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실제로 구속력 있는 판결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 배상 압박이나 이행 여부는 더 뒤의 얘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비판은 그의 스타일만큼이나 직설적이고 거칠다. ‘확산 가능성을 알고도 고의로 코로나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중국 우한에서 이번 전염병이 시작됐다며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의 위치를 거론했다.

미국의 중국 공격을 단순히 트럼프의 재선 전략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플로리다를 비롯해 이미 몇 개 주에서 중국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대중적 일간 신문 빌트와 메르켈 총리가 비슷한 목소리를 낸 독일의 중국책임론도 비판의 수위는 상당히 높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해 환자가 많이 나온 다른 유럽 국가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주목된다. 물론 친중국 성향의 이탈리아 같은 곳도 있어 한 목소리를 낼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책임론에서 중국 정부의 정보 은폐 여부나 감염자와 희생자에 대한 통계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좀 더 구체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국제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이 바로 법률적 불이익으로 굳어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미국 내 재판 등에는 고려될만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폭스 뉴스가 미국인들의 집단소송 등을 자세히 보도한 것과 맞물려 미국 법원이 실제로 중국 정부에 대고 손해배상 판결을 조기에 내린다면 미국 정부는 중국을 상대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 플로리다의 집단소송에 참가한 미국인은 수 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연방 법원이 북한에 억류됐다가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 가족들에게 5억113만 달러를 북한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이 판결은 실제로 북한 외무성에 전달됐다. 물론 북한이 배상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미국이 유엔결의와 별도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법원의 판결은 미 행정부가 중국을 향한 공격 혹은 견제하는 정책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에 청원서를 낸 인도 변호사협회의 손해배상 청구액은 20조 달러에 달한다. 다분히 ‘정치적 행위’로 보이기도 하지만 유엔에 대한 조사촉구는 국제적 압력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정치적 공세’라고 여기면서도 내심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왕이 외교부장이 나서 WHO를 옹호하면서 실제로는 트럼프를 공격하기는 했다. 하지만 드러나는 모습으로 볼 때 중국이 소송이나 청원 등을 심각하게 여기는 징후는 없다. 그래도 최초 발병지가 우한이라는 것과 “초기 대응이나 관련된 질병 정보를 WHO와 국제사회에 제때, 제대로 제공 했느냐”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는 계속 신경이 쓰일 것이다. 문제제기의 강도에 따라 중국 정부의 입장이 계속 편치 않을 수도 있다. 이번 전염병이 확산기미를 보이던 초기부터 중국이 ‘우한 폐렴’‘우한 코로나’ 같은 명칭과 표현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나, ‘발생지’와 ‘발원지’를 떼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내놓는 것도 그런 차원으로 읽힌다. 트럼프가 줄곧 ‘우한 바이러스’라고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끌고 간다면, 주체는 미국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조기에 판가름 나기도, 어느 한쪽의 일방적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판결의 이행 여부도 다른 문제다. 물론 WHO 같은 국제기구에서 발병, 확산의 주된 원인, 초기 방역의 오류, 치료에서 실책 같은 것을 과학적·실증적 자료와 함께 내놓는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WHO사무국의 친 중국 성향을 볼 때 조기에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WHO가 아니더라도 공신력 있는 대학 병원 연구소 등에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내놓을지가 주목되지만, 이 또한 실제 법적 판단의 근거로 채택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현실적 걱정은 중국을 비판하며 책임도 묻겠다는 서방 쪽의 격한 기류에 행여 라도 한국이 휩쓸릴 가능성이다. 국내에서의 방역만 보면 한국은 대응을 꽤 잘했다는 평가도 받지만, 초기에 중국 쪽 입국문을 열어둔 것과 관련해서는 비판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140개국 이상이 ‘한국발 입국제한’을 했을 정도였던 만큼 팬데믹 발생 초기 세계적 확산에 한국도 책임이 있다고 문제제기를 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여러 가지를 재면서 이런 부분에도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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