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하나로 판매는 수십 곳에
레고켐바이오는 단 하나로 수십 건의 기술이전이 가능한 ‘효자상품’을 갖고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한 무기는 약물-항체 결합(ADC) 기술인 ‘콘쥬올(ConjuALL)’이라는 플랫폼 기술이다. 바이오의약품은 약물 단백질과 이 약물이 작용하는 항원(질병 단백질)을 표적하는 항체로 이뤄져 있다. 약물과 항체를 이어주는 접합체가 링커(linker)다. 약물이 효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암세포 등 특정 항원에서만 링커의 연결이 끊어져 약물이 제때 방출돼야 한다. 하지만 혈관을 돌다가 링커가 끊어져 엉뚱한 곳에서 약물이 방출되는 일이 많다.
레고켐바이오는 암세포 등 특정 항원에서 둘 사이의 연결을 끊어 약물이 특정한 곳에서만 방출되도록 하는 링커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약물과 항체만 갈아끼우면 이론적으로 무한대의 바이오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ADC 학회인 ‘월드 ADC 서밋’에서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으로 ‘베스트 플랫폼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기술성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익수다와의 계약은 우리가 보유한 ADC 기술을 특정 항체 세 개에 쓸 수 있는 권리를 판 것”이라며 “항체마다 개별적으로 기술수출을 하면 하나의 플랫폼 기술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기술이전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약품 개발 전부터 판매 업체 골라”
김 대표는 ‘바이오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LG생명과학 출신이다. 2000년대 초반 LG생명과학이 바이오 사업을 구조조정하면서 연구원 수십 명이 회사를 떠났다. 김 대표는 이들 중 7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2012년엔 다국적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도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김 대표는 기술수출이 계속될 수 있는 비결로 LG생명과학 연구원 시절에 터득한 ‘TPP 조사법’을 꼽는다. TPP란 새 약물 개발에 앞서 경쟁사와 시장 수요를 분석해 어떤 제품을 개발하고 어디에 기술이전할지를 설정하는 절차다. 김 대표는 “보유 중인 파이프라인(후보물질) 10여 개 모두 개발 전 TPP를 설정해 경쟁 약품 대비 강점은 물론 판매처까지 미리 정했다”고 말했다.
국제적 기준에서 통용되는 자료를 구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2012년 기술이전 당시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요구한 자료의 제목 수만 200여 개에 달했다”며 “해외에서 통용되는 표준이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해 연구노트를 뒤지고 연구원을 인터뷰하는 등의 절차를 목록으로 작성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약금 덜 받고 임상 자료 확보
벤처기업은 해외 임상 절차에 익숙지 않아 기술이전을 할 때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레고켐바이오는 해외 제약사를 ‘징검다리’로 활용한다. 임상 2상 단계에서 중국 등 해외 제약사에 기술이전할 때 미국 임상에 필요한 자료를 받는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 것이다. 레고켐바이오는 마일스톤을 덜 받는 대신 다른 업체를 통해 다른 국가 시장에 진입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임상 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2015년 중국 포순제약과 맺었던 계약이 징검다리 전략의 대표 사례다. 포순제약에 기술이전했던 ADC 기술은 올해 임상 1상 중간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레고켐바이오는 이 결과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는 임상 승인 신청서에 맞는 양식으로 받기로 했다. 김 대표는 “자금력이 크지 않은 중소벤처기업이 임상 2·3상까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초기 시장에 진입하려는 벤처라면 기술이전 때 마일스톤보다는 임상 결과를 받아 다른 시장 진입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이프라인을 10개 정도 꾸준히 유지해 지속적으로 기술이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주현/임유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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