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로 불린다. 현재 한국 산업의 주력인 반도체를 잇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의미다.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배터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이다. 작년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재 국산화는 더욱 절실해졌다.
2차전지의 양대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모두 생산하는 포스코케미칼은 공격적인 투자로 소재 국산화에 뛰어든 기업이다. 생산능력은 물론 기술력을 높여 세계 1위의 2차전지 소재업체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 증설 계획을 발표한 포스코케미칼의 음극재 공장을 22일 찾았다.
세계 배터리업계가 ‘러브콜’
세종시의 포스코케미칼 음극재 2공장 입구에 들어서자 부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스코케미칼은 작년 11월 연산 2만t 규모의 1단계 생산라인을 본격적으로 가동한 데 이어 바로 연산 2만2000t 규모 2단계 라인 증설에 나섰다.
이 회사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옆 부지에도 공장을 증설해 2023년까지 생산량을 연 10만5000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60㎾h급 기준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약 175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정대헌 음극소재실장은 “전기차와 2차전지 수요가 예상한 것보다 더 빠르게 늘고 있다”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증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극재는 2차전지 수명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다. 음극재를 생산하려면 흑연이 필요하다. 자원이 풍부한 중국과 열처리 기술이 발달한 일본이 시장을 독식해왔다. 10년 전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했지만, 포스코케미칼이 생산량을 늘리며 국산화율을 50%까지 높였다.
세계 시장에서도 품질력을 앞세워 일본 미쓰비시화학과 히타치를 밀어내며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 대부분의 배터리업체들이 포스코케미칼의 음극재 샘플을 받아간다. 공급이 달린다.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포스코그룹 내부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후발주자로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웠다는 자신감과 소재 국산화로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명이 투자로 이어졌다. 포스코케미칼 사장을 지낸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는 사업 확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민경준 포스코케미칼 사장은 “포스코가 가장 잘하는 일이 장치를 효율적으로 가동해 품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흑연도 결국 탄소의 일종인데 포스코는 석탄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덕분에 내재된 기술력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공장 M&A도 검토
민 사장이 말한 포스코의 경쟁력은 세종 공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축구장 한 개보다 넓은 규모(138×60m)의 공장동 안으로 들어서니 8기의 설비라인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공장은 맹렬히 가동되고 있었지만,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원료 투입과 포장재 작업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은 모두 자동화돼 총 6명만 공장 내부에서 일한다. 스마트공장으로 생산성과 품질경쟁력을 끌어올려 선발 주자였던 일본과 중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포스코케미칼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인조흑연계 음극재 국산화에도 나섰다. 침상코크스를 3000도로 가열해 생산하는 인조흑연은 천연흑연에 비해 결정구조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배터리 수명을 더 늘릴 수 있다. 가격이 천연계보다 비싸 주로 고급형 배터리에 사용된다. 이 회사는 지난달 인조흑연계 음극재 생산공장 설립을 위해 2177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공장은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에 조성된다. 아프리카 등 해외에 진출해 천연흑연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인조흑연계 공장도 인수합병(M&A)할 계획이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68년 포스코를 설립하며 내세운 기업 이념이다. 포스코그룹은 제철을 넘어 ‘소재보국(素材報國)’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 사장은 “연구원들은 미래의 국가 산업에 기여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소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며 “양·음극재 사업을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20%, 매출 17조원 규모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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