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된 도로에 택시가 멈춰 서 있다. 버스도 다니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은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다. 이 장면은 사진가 문진우 씨가 1989년 여름, 장마로 물에 잠긴 부산 사상공단에서 출근하는 근로자들을 담은 것으로 사진전 ‘부산’의 한 작품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모습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큰비가 내리면 전국 곳곳에 ‘물난리’가 났고, 시민들은 이렇게 물살을 가르며 이동해야 했다. 물에 잠긴 길을 따라 묵묵히 일터로 향하는 1980년대 사람들의 뒷모습이 묵직한 감흥을 준다.
사진의 ‘기록성’에 매료된 작가는 고교생이던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고향 부산의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기차 안 모습, 바닷가에 놀러 나온 사람들, 큰비가 온 날의 풍경 등 어찌 보면 평범한 장면들이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의 사진들은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필름을 암실에서 인화한 작품들이라서 아날로그의 미학도 느낄 수 있다. (갤러리네거티브 5월 3일까지)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