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딸의 '그 인턴'은 '금턴'?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입력 2020-04-23 13:56   수정 2020-04-23 23:04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인턴을 일컫는 용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금턴', 나머지는 '흙턴'입니다. '금턴'은 인맥이나 든든한 배경이 없으면 참여할 수 없는 양질의 인턴 자리를, '흙턴'은 의미 없이 단순 노동만 반복하는 인턴을 의미합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은 지난 3월부터 쭉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고등·중앙법원 청사에는 별관을 제외하고 총 3개의 중법정이 있는데, 30여석 내외인 소법정과 달리 100여석의 자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를 반영한 법원의 배려(?)일까요. 실제로 정 교수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중법정으로 올라갈 때면 재판을 보러 온 다수의 시민들이나 유튜버들과 마주치곤 합니다.

#1. 지난 22일 열린 정 교수 재판에는 전 공주대학교 대학원생 A씨와 이 대학의 김 모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검찰은 정 교수 딸 조민의 입시비리 의혹을 '7대 허위 스펙'이라고 부릅니다. 이 중 공주대에서 허위로 체험활동 확인서를 발급받았다는 의혹과 관련된 증인신문이 이뤄진 겁니다. 입시비리 의혹에 대해 정 교수가 받고 있는 혐의는 '업무방해' 입니다. 정 교수와 딸 조민이 서울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허위이거나 조작된 증명서 등을 제출해 입학사정 업무를 방해했다는 뜻입니다.

이날 오전 먼저 증인으로 출석한 공주대 대학원생 출신 A씨는 긴장된 모습으로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A씨는 정 교수의 딸인 조민이 제 3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초록의 제 1저자입니다. A씨는 홍조식물과 유전자 등에 대해 주로 연구했고, 필요한 경우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실험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사건의 논문은 2009년 8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조류학회에 발표된 논문입니다. A씨는 법정에서 학술대회가 열리기 2~3달 전인 2009년 5~6월 경 조민을 처음 봤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조민이 제3 저자로 등재된 초록을 일본학회에 보낸 시기는 2009년 4월 무렵입니다. A씨의 증언대로라면 조민은 이미 일찌감치 논문 초록과 논문 발표를 위한 포스터에 이름이 등재돼있던 셈입니다. 재판부는 A씨의 증언을 듣고 "증인, 잘 듣고 이야기 하세요"라며 다시 한번 확실한 대답을 요청했습니다. A씨는 조민을 만난 적이 없던 시기에 조민의 이름이 추가됐다고 증언했고, 조민의 이름을 갑자기 넣기로 결정한 사람은 김 모 교수이며 '학생이 학회에 같이 가고 싶어한다'는 당시 상황 설명을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실제 4월22일 법정에서 이뤄진 A씨 증인신문>

▶검사 : 증인이 김 교수로부터 일본학회 포스터에 조씨 이름을 추가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던 시점이, 증인이 조씨를 만난 이후였나요?
▶A씨 : 아니요
▶검사 : 그럼 증인이 조씨를 만나기 전에, 조씨 이름 넣자는 이야기 들었다는 거네요?
▶재판부 : (말 끊고) 증인 잘 듣고 이야기 하세요. 그게 말이 되나요? 다시 한 번 질문 하세요
▶검사 : 증인, 김 모 교수로부터 일본 학회 포스터에 조씨 이름을 추가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던 시점이, 증인이 조씨를 처음 만난 이후였나요?
▶A씨 :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검사 : 일본 학회에 보낸 영문 초록파일의 문서 속성을 보니, 작성일자가 2009년 3월 30일 입니다. 그럼 증인이 3월 말 작성해서 김 모 교수가 수정한 후 일본 학술대회에 제출한 것이 맞나요?
▶A씨 : 네 맞습니다
▶검사 : 검찰조사 시 증인은 2009년 5~6월 경 조씨를 처음 보았다고 진술했고 증인 기억이라고 오늘도 진술했습니다. 근데 논문의 영문 초록이 완성된 시기는 3얼 30일 경이고, 초록이 일본에 보내진 건 4월경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증인이 조씨를 만난 적도 없는 시기였죠?
▶A씨 : 네 그렇습니다
▶검사 : 증인이 대학원 재직 내내 연구한 논문 초록에 만난 적도 없는 조씨 이름을 추가하기로 한 것은 김 모 교수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A씨 : 네 그렇습니다

A씨는 조민이 홍조식물이 든 어항의 물을 갈아주는 활동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한 연구원들의 기여도를 묻는 정 교수 측 변호인의 질문엔 다른 연구원이 40~50%에 달하는 반면 조민은 1~5%쯤 된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이 "논문 포스터에 제 3자로 조민의 이름이 들어간 것에 대해 증인의 현재 판단은 어떤가"라고 묻자 A씨는 "그때 당시 이런 상황을 알았더라면 안 넣었을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 후보자였을 당시, 조 후보자는 "딸은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조류 배양과 학회발표 준비 등 연구실 인턴 활동을 하고, 주제에 대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며 "이를 인정받아 같은 해 8월 2일부터 일본에서 열린 국제조류학회의 공동 발표자로 추천됐다"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2. 같은 날 오후 증인으로 나온 공주대 김 모 교수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조민의 공주대 체험활동 확인서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 부끄럽다"고 증언합니다. 김 교수는 정 교수의 대학 동창으로 정 교수로부터 딸 조민의 인턴 체험활동을 부탁받았다고 합니다. 검찰은 법정에서 김 모 교수가 작성한 확인서 4개를 제시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확인서는 각각 조민의 체험활동 기간을 2007년 7월~2008년 2월, 2008년 3월~2009년 2월로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조민을 2008년 7월 무렵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2007년 7월부터 2008년 7월 이전까지의 활동 부분은 사실과 명백히 다르지 않냐는 검사의 질문에 김 교수는 "네, 제가 소홀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홍조식물을 배양하는 것은 준비된 물에 개체를 조각내 잘라서 넣어주는것이어서 1시간도 안 걸린다"며 "그건 허드렛일이다, 고등학생이 무얼 하겠느냐"고도 말했습니다. 또 일본 학회로 출국하기 직전인 7~8월 조민이 많아야 두 세번 연구실에 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어 "해당 연구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조민을 올려준 것은 입시 스펙을 위한 것"이라며 "정경심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조민에게 '국제학회 포스터 발표 및 논문 초록집 수록' 등의 활동을 했다는 확인서를 발급해준 것에 대해서는 "제 3저자였고, 고등학생으로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며 "과하게 쓴 것은 맞지만 허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실제 4월22일 법정에서 이뤄진 김 교수 증인신문 내용>

▶정 교수 측 변호인 : 조씨가 허드렛일을 도와주거나 할 때 A씨 (오전 증인)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원의 업무 보고도 도와줄 수 있었겠네요?
▶김 교수 : 네 근데 아까 검사님에게도 말씀드렸지만 고등학생들은 허드렛일을 돕는 거라 연구에 참여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변호인 : 체험활동 확인서를 작성할 때 증인은 내가 허위로 쓰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나요?
▶김 교수 : 그냥 보기 좋게 만들어주는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연구실에서 하는 일에 대해선 했다고 쓰면서 허위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과하게 쓴 건 분명합니다. 고등학생이 했던 일로 써야 하는데 그렇게 쓴 건 잘못한 게 맞습니다.
▶변호인 : 고등학생이 이런 활동을 했다는 것은 체험활동의 일환으로 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거죠?
▶김 교수 : 네 맞습니다
(중략)
▶김 교수 : 대학 내 모든 학생들이 국제활동에 지원하자는 뜻으로 했지만 막상 대학입시에 활용이 되고 결국 제가 그 학생을 망친 것 같아서 미안하고 그런 서류를 만들 때 좀 더 엄정하게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했더라면…제가 잘못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자초한 일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계속되는 취업난에 '흙턴'이라도 간절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턴 단계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거치고 있을 청년들에게 해당 재판 과정이 어떻게 읽힐 지 마음이 씁쓸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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