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칙중심회계, 실질 반영 지혜 모아야

입력 2020-04-23 18:23   수정 2020-04-24 00:16

싱그러운 꽃내음 가득한 4월의 봄날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세상이 격변하면서 평범한 일상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로 회사와 감사인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경우 사업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하더라도 제재를 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많은 회사가 코로나19 확산 이전에 결산을 준비한 덕에 예상보다는 적은 수의 회사만이 신청해 면제 대상이 됐다. 사업보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못하면 거래소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데 이를 유예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고 3월 정기주주총회 속행 결의를 통한 후속 주총에서 재무제표를 승인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규정도 보완했다.

작년 말 기준, 코로나19 감염 사례는 일부에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를 결산에 대한 보고 기간 후의 사건으로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올 2월 말부터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는 분·반기의 중간재무제표는 물론, 연차재무제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전례 없는 부양조치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본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 정상적인 경제활동 중단으로 인한 소비위축과 성장둔화의 경기침체를 넘어 대량실업과 자산가격 추가하락으로 이어지는 대공황에 대한 우려가 상존한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아시아의 경제성장률을 2.2%, 한국은 1.3%로 하향 전망했다. 하지만 노무라증권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6.7%로 예측하면서 가장 나쁜 시나리오로 전망할 경우 -10% 이하로도 내려갈 수 있으며, 미국 역시 -9%이지만 가장 나쁠 경우 -10% 이하로 예측하고 있다. 기관에 따라 예측치가 큰 차이를 보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딜로이트의 전망자료에 의하면 항공·여행·호텔·정유·가스·석유화학 및 금융 업종 그리고 공급망이 붕괴된 자동차의 경우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대한항공의 경우 2월 이후 여객매출이 사실상 제로(0) 수준이라고 한다. 작년 여객매출이 국제선은 7조3000여억원, 국내선은 5000여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재무제표는 가정과 미래추정을 전제로 한다. 과거 경험과 현재 상황에 비춰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재무제표상 자산과 부채의 적정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한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위험과 불확실성 모두는 ‘임의성’이란 개념과 관련이 있지만, 위험은 사건이 측정 가능한 확률을 갖는 데 비해, 불확실성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어 과거 관찰로도 미래에 대한 예측능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으로 언급했다. 결국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미래예측은 광범위한 변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재무제표는 미래 추정을 전제로 하므로 기업은 코로나19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중간재무제표는 물론 연차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또 경영진이 코로나19의 잠재적 영향과 이를 통제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고려해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가능성을 평가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3월 말 기준의 분기재무제표와 6월 말 반기재무제표 제출기한이 당장 도래한다.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미주 및 유럽 등에 진출한 기업들이 기한 내 1분기 재무제표를 제출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게다가 코로나19가 향후에 미칠 불확실한 영향을 고려해 재무제표 작성의 전제가 되는 미래추정까지 수행해야 한다. 극도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정에 의해 자산과 부채를 평가해야 하는 전례 없는 회계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개별 기업은 물론 각국의 회계 관련 당국 및 회계법인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회계기준을 준수하면서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게 정보를 제대로 알리고, 초유의 불확실성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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