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확실히 정부 발표와는 다릅니다." 국내에서 탄탄한 사업 기반을 갖춘 한 기업 임원의 하소연입니다. 평소엔 사업 자금을 사용하라고 부추기던 은행들이 최근 들어선 신청한 대출 규모를 어떻게 해서든 줄이려고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중견 기업인 이 기업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매출을 내며 사세를 키워왔습니다. 대기업에 비해 인지도는 낮아도 적절한 가격 경쟁력과 제품 품질로 나름의 시장을 구축해왔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난해부터 국내외 경기 침체 우려가 일면서 수요가 줄기 시작했지만 올 들어선 급격한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출은 주는데 고정적으로 나가야 하는 인건비와 운전자금, 금융비용 등으로 하루하루 자금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달 들어선 순환 무급 휴직까지 결정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결국 코로나19가 장기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전사적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동성을 갖춰 놔야 올해를 잘 버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다수의 은행을 통해 차입을 추진했습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 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은 꼬투리만 있어도 그것을 핑계로 대출 금액을 자꾸 줄이려고 합니다. 연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이달 들어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코로나19의 영향을 감안해 상당수 업종, 광범위한 기업들의 신용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 역시 최근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은행들이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우려해 대출을 꺼린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 것을 우려해 각종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의 자본 확충, 특수목적법인(SPV) 설립을 통한 회사채 보증·매입,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채권(P-CBO)이나 회사채 차환·신속인수 프로그램 확대 등이 대표적입니다.
정부의 적극적 '돈 풀기'로 경색됐던 회사채 시장이 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부 기업들의 회사채 '완판', '조달 성공' 등의 뉴스도 잇따라 들립니다. 하지만 우량한 신용등급의 대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세 중소기업도 아닌 중견기업들은 이리저리 치여 제 때 금융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올 2분기부터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파장이 본격적인 수치로 드러나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많습니다. 중소기업에서 시작된 휴업과 폐업이 중견기업으로 옮겨 붙고, 대기업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됩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풀린 각종 정책 자금이 '보여주기 식'이 아닌 정말 필요한 산업과 기업 곳곳에 전달되길 바라봅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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