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캘란, 한국서 떠난다며 40명 해고하더니…'위장 철수' 의혹

입력 2020-04-29 14:20   수정 2020-04-29 14:57

30년 만에 한국 법인을 철수한 영국 위스키 업체 에드링턴이 주력 제품인 맥캘란 등의 국내 판권을 전직 한국 대표가 세운 회사에 넘겼다. 에드링턴의 북아시아 지역 대표 데이비드 패티슨은 29일 "지난 2월 에드링턴코리아 법인을 철수하고, 맥캘란 등 주요 제품의 독점 공급 유통회사로 디앤피 스피리츠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류 업계에선 '위장 철수'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구조조정을 위해 주류 대기업들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판권을 팔 것처럼 속이고, 그 과정에서 에드링턴코리아의 직원 40명을 내보내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이다.

맥캘란의 유통 독점 계약을 체결한 디앤피 스피리츠는 노동규 전 에드링턴코리아 대표가 작년 11월 세운 회사다. 노 전 대표는 2016년 에드링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총괄을 거쳐 2017년 11월부터 에드링턴코리아 대표를 맡아왔다.




맥캘란은 침체된 위스키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대표 브랜드다. 마니아층이 많아 연간 순이익만 20~30억원에 달한다. 에드링턴의 한국 철수설에 작년 말부터 맥캘란 판권을 갖기 위해 국내 주류 업계가 너도나도 협상 테이블에 오른 바 있다.

새 법인 디앤피 대표는 노동규 전 에드링턴코리아 대표(사진)다. 그는 지난해 11월 판권 인수를 위한 법인 '디앤피 스피리츠'를 세웠다. 에드링턴코리아 대표로 재직 중에 자신의 주류 유통 법인을 만들고, 현재의 직장과 협상을 벌인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데다 상도덕에 어긋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주류 기업들은 내부 인력을 총 동원하고 회계 법인을 선임하는 등 '맥캘란 판권따기'에 열을 올렸다. 한 주류회사 관계자는 "이미 전 대표와 구조조정 계획과 올해 사업계획까지 다 짜놓고, 이를 감추기 위해 대기업과 주류 회사들을 이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류 업계가 '위장 철수 의혹'을 제기한 이유는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때문이다. 전체 직원의 절반 가량인 40명의 직원에 대해 올초 '경영난'을 이유로 퇴직시켰다. 근무기간에 따라 6개월에서 24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에드링턴코리아 전 직원은 "회사 경영난이라고 해 퇴직했는데, 경영난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작년 11월에 법인을 세워놓고 6개월 만에 제품 독점판권을 가져가 배신감을 느낀다"며 "각본을 짜놓고 위장철수를 하기 위해 다른 주류회사들과 '찔러보기식'의 협상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맥캘란은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먼저 찾는 손님들이 많아 이제 별다른 영업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술"이라며 "현장 영업직 등이 더이상 필요 없어지자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표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의혹들과 관련해선 할 말이 없다"며 "본사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협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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