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23일 직원 성추행 파문으로 시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내년 4월7일 보궐 선거까지 시정에 공백이 생긴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은 27일 회의를 열고 오 전 시장의 제명을 결정했습니다. 불과 이틀이 지난 29일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공개적으로 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자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김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야 한다"며 "잘못했으면 잘못한 대로, 잘했으면 잘한 대로, 선거로 심판받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지만, 홍준표 전 대표를 내세워 대선을 치른 것도 마찬가지"라며 야당까지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은 재보궐 선거 때 후보를 내지 않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헌 96조2항에 따르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시절에 생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민주당 당헌에는 중대한 잘못이 어떤 범죄인지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 사례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11월 충남 천안의 구본영 전 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벌금 8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 시장직을 잃었습니다. 이후 당헌대로 공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가 야당을 중심으로 나왔습니다.
당시 민주당 충남도당은 "구 전 시장은 부정한 뇌물이나 직권남용에 의한 부정부패가 아닌 후원회를 통해 후원금을 받지 않은 정치자금법 위반이었기 때문에 중대한 잘못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이 사례로 보면 정치자금법 위반은 민주당이 말하는 중대한 잘못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 15일 총선과 함께 치러진 보궐 선거에 한태선 민주당 후보를 냈습니다. 하지만 박상돈 통합당 후보가 한 후보를 누르고 천안시장에 최종 당선됐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안 지사는 2018년 3월 비서 성폭행 사건에 휘말리면서 지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같은 해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민주당 당헌 96조2항에서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조건이 됐습니다. 96조2항은 보궐 선거라고만 규정해 놨을 뿐 본 선거는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당헌과는 상관없이 후보를 낼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 후보인 양승조 충남지사가 출마해 당선에 성공했습니다.
민주당 내 일부 의원은 사석에서 충남지사 사례를 들며 내년 부산시장 선거에도 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보궐 선거로 치러지기 때문에 당헌이 적용돼야 합니다. 결국 민주당이 성범죄를 당헌에서 규정하는 중대한 잘못으로 보는지 여부가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는 셈입니다. 민주당이 만약 부산시장에 후보를 낸다면 성추행과 같은 범죄는 '중대한 잘못'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일 겁니다.
김 의원은 "성범죄는 개인의 일탈이지만, 선거공약은 정당의 약속"이라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부산시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이 있고, 그 약속은 민주당이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당이 내부에서 만든 기본 방침인 당헌 역시 지키는 게 원칙 아닐까요? 만약 민주당이 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한다면 성추행이 중대한 잘못이 아닌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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