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처럼 위기에 베팅한 2020년 동학개미들 "기회를 잡으려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라"

입력 2020-05-04 09:01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는 ‘팩트’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는 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이 처한 당시 상황과 위기를 겪어내는 경제 주체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조금은 과장되게 보여준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가공한 내용과 진짜 사건은 무엇일까.

외환위기 앞두고 부딪친 재경원과 한은

영화 속 한시현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김혜수 분)은 국가 부도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한다. 열흘 사이 일곱 건의 보고서를 냈지만 상사는 묵살한다. 청와대는 물론 재정국(당시 재정경제원을 지칭) 등 정부 부처는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일까? 한 팀장은 1997년 3월 한은에 외환위기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처음 제출한 인물인 정규영 당시 국제부장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은이 가장 먼저 위기를 경고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당시 재경원(현 기획재정부)은 1997년 1월부터 11월까지 환율, 외환보유액, 외환시장 동향과 관련한 대책 보고서 83개를 작성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상황이 악화할 경우 외환위기로 치달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는 한은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1997년 11월 6일 한은 실무진이 당시 이경식 한은 총재에게 IMF 구제금융 신청을 건의했다. 또 같은 달 18일에는 한은이 정부에 IMF 구제금융 요청을 촉구했다. 하지만 재경원 관료들은 IMF행을 최대한 미루려고 했다.

재경원 차관 등이 IMF로 가기 위해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 정부는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은 물론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상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측과의 협상 결렬 등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결국 IMF행을 선택한 것이다. 사소한 잘못도 있다. 영화에서는 한국은행 총재를 총장으로 잘못 표현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까

외환위기때로부터 23년 후인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며 경기 침체 우려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때와 같은 위기가 지금도 일어날까. 경제지표는 위기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48.7)보다 4.5포인트 떨어져 44.2로 하락했다.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한 이후의 실물 지표 악화가 확인되면 시장은 2차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요 기관들은 올해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때 (1998년)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스탠다드차타드, UBS, 모건스탠리, 노무라증권, 씨티, 크레디스위스, 피치, 캐피털이코노믹스,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나티시스,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11개 기관이 내놓은 올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0.9%였다. 이들 중 절반이 넘는 6곳이 올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비관적으로 전망한 일본계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 성장률이 -6.7%로 추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캐피털이코노믹스는 -3.0%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UBS(-0.9%), 스탠다드차타드(-0.6%), 피치(-0.2%) 등도 한국이 올해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비관적인 노무라증권을 제외해도 역성장을 전망한 기관들의 전망치 평균은 -0.3%였다.

한국이 올해 플러스 성장을 한다고 해도 성장률이 0%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 기관이 다수였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0.2%, 씨티와 크레디스위스는 각각 0.3%, 나티시스는 0.9%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기구인 ADB는 그나마 가장 긍정적인 1.3%의 성장률을 전망했다.

정부와 ‘동학개미’가 방어할 수 있을까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은 그때와 다르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연 0.75%로 인하했다. 정부는 재난기본소득, 채권안정펀드 등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환율 안정을 위해 미국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도 맺었다. 하지만 정책의 효과를 단언하긴 어렵다.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낙관론에 베팅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투자자들이 헐값에 판 주식을 외국인 투자자가 사들여 큰 수익을 올렸는데, 당시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가세했다. 개미들은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외국인 매물을 받아내며 주가하락을 막아내는 모습이 1894년에 일어난 반외세·반봉건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을 닮았다는 것. 이들이 영화 속 고려종합금융 윤정학(유아인 분)처럼 인생을 바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한시현은 얘기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 yykang@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경제가 침체하면 주가가 하락하는 등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까.

②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할까.

③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오를 것이라 생각하고 주식을 사는 행위는 타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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