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와 별거 중이면?"…재난지원금 지급 앞두고 불만 급증

입력 2020-05-05 14:37   수정 2020-05-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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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모씨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못 받을 처지다. 세대주가 남편인데 이혼 소송 중이라 별거하고 있어서다. 주민센터에서는 ‘세대주 위임장을 받아와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씨는 “아이도 내가 키우고 있는데다 벌이도 마땅찮아 긴급재난지원금이 필요한데, 전부 남편에게 돈이 가게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지난 4일부터 저소득층 가구를 시작으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가구원 수에 따라 40만~100만원을 주는 것이다. 개인이 아닌 세대 단위로 지급하며 저소득층 외 가구는 11일부터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세대주에게 지급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사실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별거나 가정폭력 등 가족 내 갈등으로 세대주를 만나기 어려운 세대원들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원금은 은행과 카드사를 통해 신용·체크카드에 포인트로 충전하거나, 주민센터를 방문해 선불카드나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받아야 한다. 신용·체크카드는 세대주 명의로 발급받은 것만 가능하다. 선불카드와 지역사랑상품권은 세대원이 신청하려면 세대주의 위임장을 받아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70대 여성은 “세대주인 남편 명의의 카드가 없어 18일까지 기다린 후 선불카드나 종이상품권으로 받아야 한다”며 “내 명의의 신용카드로 받으면 편한데 세대주가 아니라서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근 ‘재난지원금 세대원도 신청가능하게 해주세요’ ‘정부재난지원금 이혼소송, 별거 가정의 세대원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등의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청원인은 “아버지(세대주)는 바람나서 집 나가시고 양육비 하나 주지 않았고, 15년 넘게 연락이 안 되고 있으며 이혼처리 조차 힘든 상황이다”고 호소했다.

시민단체도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지난 3월 논평을 통해 “재난과 경제위기 시기에 가족 내 갈등과 폭력의 비율이 증가하며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국내외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어떤 가족 구성원은 가족 내 갈등이나 위계로 가구 단위로 지급된 재난지금자원에 접근이 불가능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일 수록 취약계층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원래 대리인 제도는 부동산 계약 체결 등에도 쓰이던 것”이라며 “세대주가 중환자여도 위임장 서류만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대주를 만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남영/박종관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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