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특허 보호와 함께 개발비용 회수를 보장해주는 법제도가 거듭된 실패를 이겨내게 했다는 것이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성공시키기까지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어렵사리 개발에 성공하고도 약효가 기준치에 미달하거나 독성이 강해 폐기처분되는 비율이 70%를 넘는다. 그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전적으로 회사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천신만고 끝에 개발해낸 신약에 일정한 마진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고, 미국이 그런 제도를 시행하는 덕분에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기고문의 골자다.
“렘데시비르(10일간 치료 기준)의 생산 원가가 10달러(약 1만2000원)로 추정되는데 실제 판매가격은 4500달러(약 548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로이터통신의 기사를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한 가지 논점(論點)이 떠오른다.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폭리 논란’이다.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신종플루 치료제로 각광받은 타미플루도 특허를 보유해 큰 이익을 남겼던 사실이 더해져 ‘생명장사꾼’이라는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과학·의학 전문기자 칼럼을 통해 “렘데시비르가 10년간의 좌절을 딛고 부활한 데는 연구개발 과정을 꾸준하게 지원한 연방정부의 도움도 컸다”며 “성공 과실을 길리어드가 독식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정부가 신약 가격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새로울 게 없다. 미국의 진보진영 정치인과 운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다.
오히려 주목되는 게 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의 신약정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지금의 공화당 정부는 물론 버락 오바마와 빌 클린턴이 집권한 민주당 정부 시절에도 제도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약을 성공시키기까지 제약회사들이 들이는 엄청난 실패비용을 감안해주는 게 궁극적으로 미국 전체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제조원가만을 가격에 반영하도록 통제한다면 제약회사들이 온갖 시행착오와 돌발비용을 무릅쓰고 신약 개발에 나설 유인(誘引)이 사라진다. 그러면 수많은 환자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기회를 잃게 되고, 신산업을 육성할 기회도 놓치고 만다. 한때 공포의 불치병이었던 에이즈를 비롯해 박테리아 감염증, 낭포성 섬유증, 심혈관 질환을 비롯한 난치병 치료제가 미국에서 속속 개발된 것은 이런 현실을 제대로 포착한 제도 덕분이었다. 물론 ‘성공에 대한 보상(補償)’을 구실로 지나친 폭리가 횡행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기업을 몰아붙여서 신기술·신제품 개발 의욕을 꺾는 것은 더 문제다.
렘데시비르 가격 논쟁은 당위론과 현실론이 세계 곳곳에서 끝없이 맞부딪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대부분 담론에서 당장 듣기에 그럴듯한 당위론이 이치를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 현실론보다 대중의 눈과 귀를 더 쉽게 사로잡는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간다’는 구호로 한 시기 세계의 절반을 유혹했던 공산주의 담론이 단적인 사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봤자 돌아오는 몫이 정해진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프랑스어 단어 ‘레세페르(laissez-faire: 무간섭주의)’는 ‘레세누페르(laissez-nous faire: 우리가 하자)’의 줄임말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같은 외부의 개입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자는 것, 그것이 자유주의의 기본정신이다. 제약업종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등 대부분 산업이 미국과 영국의 자유주의 모델에서 싹트고 꽃을 피운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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