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회장의 이날 대국민 사과는 삼성그룹 내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뤄졌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재판부의 주문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지난해 10월 첫 공판에서 삼성 측에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참고해 삼성그룹 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라”고 주문했다. 당시 이 부회장을 기소한 특별검사 측은 “해당 규정은 사실상 한국의 집행유예 제도와 같고, 담당 부장판사는 양형 심리와 관련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예단을 갖고 있다”며 두 차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준법감시위 설치 등이 유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특검의 첫 번째 기피신청은 지난달 17일 기각됐다. 재항고 건은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은 기피신청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잠정 중단됐다.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요구한 준법감시위의 사과 권고를 삼성이 받아들인 만큼 이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모두 86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이 코어스포츠에 준 용역대금 36억여원 외에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에게 준 34억원 상당의 말 세 마리, 동계영재스포츠센터 지원금 16억원 등을 모두 뇌물로 인정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에서는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었을 때 5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지만 재판부 재량으로 2년6개월까지 감형할 수 있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 가능하다.
부장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대국민 사과’는 법정 자백이나 진술과 달리 직접적 감형사유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여러 측면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은 법원 재판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도 관련이 깊다. ‘삼바’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일어난 분식회계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편의를 위해 벌어진 일로 보고 있다. 차장검사 출신인 모 변호사는 “이 부회장 측도 수사 상황을 고려해 입장문을 발표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검찰에선 크게 신경쓸 만한 사안으로 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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