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스크린에 세계 각국 팬들의 얼굴이 가득 펼쳐졌다. 이들은 콘서트 현장이 아니라 집에서 실시간으로 공연을 즐기는 온라인 관객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무대에 서서 몇몇 팬들과 반갑게 1 대 1 화상 대화를 나눴다.
10일 오후 3시부터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방영된 ‘NCT DREAM’ 콘서트 모습이다. 지난달 26일 ‘슈퍼엠’, 이달 3일 중국 아이돌 그룹 ‘웨이션브이’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의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 공연이다. 이 시리즈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환경에 맞춰 제작된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다. 3만3000원을 결제하면 세계 어디서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달 17일에는 마지막으로 ‘NCT 127’의 공연이 열린다.
콘서트장은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첨단 기술로 구현됐다. 무대 전체가 해저 도시처럼 꾸며지기도 했고, 자동차가 무대 위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SM 관계자는 “전 세계 팬들이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실시간 소통까지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며 “첫 회인 슈퍼엠 공연에는 7만5000여 명이 관람했는데 이는 오프라인 공연 평균 관객 수의 7.5배”라고 말했다. SM이 처음으로 선보인 유료 온라인 공연에 세계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미국 ABC 방송은 “K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라이브 콘서트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온라인 공연 문화 개척하는 K팝
코로나19 위기에도 ‘코리아 프리미엄’의 출발점이자 상징인 K컬처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온·오프라인, 국내와 해외 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시도를 해온 덕분이다. 여기에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더해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중심에 서고 있다.
선두주자는 K팝이다. 방탄소년단(BTS), 슈퍼엠 등을 중심으로 온라인 공연 문화를 적극 개척하고 있다. BTS는 지난달 18~19일 유튜브 채널에서 ‘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방방콘)’를 열었다. 기존 콘서트와 팬미팅에서 보여준 공연 실황을 묶어 하나의 콘서트처럼 제작했다. 조회 수는 5059만 건에 달했다. 새로운 관람 문화도 만들어 냈다. 팬들은 블루투스로 응원봉 ‘아미밤’을 연결해 열띤 응원을 보냈다. 이틀간 162개국 팬들이 참여해 50만 개의 아미밤이 연동됐다.
BTS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오프라인 공연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다. 작년 6월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유료로 중계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은 접근성이 뛰어난 온라인을 새로운 시장으로 인식하고 적극 활용해 왔다”며 “앞으로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K포맷 열풍
K포맷과 K무비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K포맷은 국내 예능과 드라마의 기획 콘셉트와 구성, 제작 방식 등을 해외에 판매하는 것을 이른다. K포맷이 수출된 국가는 2015년 중국, 동남아시아 등 10개국에서 현재 미국, 유럽 등 45개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1월부터 폭스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미국판 복면가왕’인 ‘더 마스크드 싱어(The Masked Singer)’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시즌 2는 회당 1400만 명이 시청했고, 현재 방영 중인 시즌 3의 첫 방송은 2300만 명이 지켜봤다. Mnet의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미국과 중국 등 10개국에 수출됐고, tvN 드라마 ‘라이브’ ‘기억’ 등도 미국에서 리메이크돼 방영될 예정이다.
K포맷 열풍엔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시스템의 힘이 컸다. 최근 국내 프로그램들은 제작할 때부터 200~500쪽의 ‘포맷 바이블(제작 당시 상황과 기법을 모두 기록한 것)’을 만든다. 덕분에 미국과 유럽에선 제작 속도가 늦어질 것을 우려해 한국 포맷 구매를 꺼리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했던 영화 부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이후 미국과 중국, 동남아 등 현지 제작사들이 한국 제작사와의 합작을 잇달아 요청하고 있다.
K컬처, 시장 경계 허물며 발전
K팝과 K포맷 등의 글로벌 시장 공략이 가속화하며 한국 콘텐츠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콘텐츠 매출은 전년 대비 5.4% 늘어난 125조5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콘텐츠 수출액은 8.2% 증가한 103억3000만달러(약 12조원)를 기록했다. 이런 성과는 시장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극복해 온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최정봉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는 “우리는 국내 시장이 작다 보니 처음부터 국내와 해외를 구분 짓지 않고 시장 전체에 맞춰 충실히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며 “최근 세계 콘텐츠 지형이 바뀌면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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