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부품업계에서 1분기는 계절적 비수기로 통한다. 완성품업체의 신제품 출시가 2분기부터 본격화되기 때문에 대량 수요가 없다. 하지만 LG이노텍은 이 같은 통설을 깨고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기업들이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일궈낸 이변이다. “잘하는 사업은 더 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철동 LG이노텍 사장(사진)의 경영 방침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잘하는 사업 더 잘하게
LG이노텍은 올 1분기 매출 2조109억원, 영업이익 1380억원을 올렸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6.9% 늘었다.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치(792억원)를 뛰어넘었다. 2년 전인 2018년 1분기와 비교하면 일곱 배 이상 뛰었다.
기대 이상의 실적 호조에는 기판소재사업이 ‘숨은 효자’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업체로 알려진 LG이노텍을 지켜준 건 전자기기의 기본 뼈대 역할을 하는 기판소재였다. 올 1분기 기판소재사업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한 289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률도 18%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일어난 호재는 아니다. LG이노텍은 지난 3년간 반도체 기판,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용 포토마스크, 차세대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 설비 개선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잘하는 사업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정 사장의 판단에서다. 모두 세계시장에서 LG이노텍이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제품이다.
LG이노텍의 예상은 적중했다. 통신용 반도체 기판인 라디오프리퀀시-시스템인패키지(RF-SiP) 성장세가 가장 가파르다. 통신용 반도체 기판인 RF-SiP는 스마트폰 두께를 얇게 유지하면서도 고용량 통신 반도체를 탑재할 수 있도록 돕는 부품이다. RF-SiP는 매년 매출이 40%씩 뛰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5G(5세대) 스마트폰과 폴더블폰이 확산하면서 스마트폰에 필요한 반도체 용량도 커지고 있다”며 RF-SiP 수요가 급증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얇은 막)와 포토마스크(미세회로를 새긴 차단막)도 앞날이 유망하다. LG이노텍은 두 제품의 부피를 줄이면서도 미세회로를 그릴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해상도와 얇은 베젤 디스플레이에 적합하다. 김지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에서 10.5세대 LCD(액정표시장치)를 개발 중이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도 활발히 개발하고 있다”며 “신제품을 개발하면 두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분석했다.
“고객 감동 못 주면 과감히 정리”
1분기 흑자전환 배경에는 지난해 추진한 체질 개선의 효과도 컸다. “시장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업은 정리해야 한다”는 정 사장의 방침에 따른 조치다. LG이노텍은 작년 11월 모바일용 메인기판(HDI) 사업에서 철수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적자가 지속되면서 과감히 손을 뗐다. 대신 HDI 사업 인력을 반도체 기판 사업에 투입했다. 성장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것이다.
동시에 생산 혁신 속도를 높였다. LG이노텍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통신용 반도체 기판 공정에 새로운 공법을 도입했다. 제품 가공 시간을 줄이고, 시간당 생산량을 늘렸다. 신소재를 개발해 기존 제품보다 통신 중 발생하는 신호 손실을 70% 줄이는 데 성공했다. 테이프 서브스트레이트 공정에도 독자적인 접착 기술을 개발하고, 장비를 최적화해 공정 속도를 높였다.
LG이노텍은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혁신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해 LG이노텍은 국내 R&D 투자 상위 100대 기업 중 12위를 차지했다(한국 산업기술진흥원). 정 사장은 “지속 성장의 기반을 구축하면서 동시에 1등 소재부품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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