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이득 입법구멍에 환수 불능↑
불공정거래 부당이득 산정기준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018년 10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20대 국회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개정안은 불공정거래 행위자가 얻는 부당이득을 전액 환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미공개정보 이용과 시세조종(주가조작),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당이득 산정 규정은 없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관행적으로 범죄 혐의자가 불공정거래 행위로 얻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빼는 차액산정 방식으로 부당이득액을 책정하고 있다.
불공정거래 부당이득 산정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법원이 ‘부당이득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며 부당이득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금융·증권범죄를 많이 다루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담당한 불공정거래 사건 중 ‘부당이득 산정 불가’로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2014~2018년 74명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김태섭 바른전자 회장에게 주가조작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추징금은 부과하지 않았다. 검찰은 김 회장이 189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정상적인 주가 변동에 따른 상승분이 포함돼 있어 부당이득액 산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박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부당이득액 산정에 쓰고 있는 차액산정 방식을 택했다.
금융위-검찰은 ‘핑퐁게임’
‘무쟁점 법안’으로 분류되는 이 법률 개정안이 1년 넘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부당이득 문제에서 과징금 등 행정제재 강화를 우선시하고 있어 부당이득 산정기준을 법제화해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선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형사처벌 대상인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도 과징금 제재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판 등 형사처벌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수년씩 걸려 피해자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당국 조사로 사실관계를 가려낸 뒤 신속하게 과징금 제재를 내리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2015년부터 불공정거래보다 위법성은 낮지만 시장거래 질서를 교란한 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금융위와 검찰·법무부는 2018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부당이득 산정기준 법제화와 과징금 확대 등을 놓고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과징금을 확대할 경우 법원 판결 이전 금융당국이 사건 처리를 주도할 것을 우려한 검찰과 법무부의 반대로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도 검찰이 원하는 부당이득 산정기준 법제화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라임과 신라젠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서도 부당이득 환수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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