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의 충돌에 많은 사람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반응이다. 이 할머니가 워낙 상징적인 인물이어서 파장이 커졌지만 오래 묵은 갈등이라는 설명이다. 2004년에는 위안부 할머니 33명의 모임인 ‘무궁화회’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전신)를 “앵벌이로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을 위한답시고 손을 벌려 걷은 그 많은 돈 대체 어디에 사용했습니까”라며 항의문을 발표했다.
내부 비판도 나왔다. 여성학자 김정란 씨는 정대협 활동가로 일한 뒤 내부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논문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말 이끌어낸 한·일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거부한 것과 묘하게 대비된다.
정의기억연대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방해세력들은 반성하기 바란다”며 반격했다. ‘폄훼, 훼손, 분열’ 등 거친 단어가 동원됐다. 1991년 출범 이래 30년간 위안부 문제를 국제공론화하고 대일 투쟁을 이끌어온 주역으로서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란의 단초를 제공한 스스로를 돌아볼 시점이다.
정대협은 공로도 있지만, ‘위안부는 20만 명’이라는 식의 과장된 정보가 확산되는 데도 일조했다. 역사학자 강만길 등의 주장이었지만, 이는 1944년 일제가 발포한 ‘여자정신근로령’에 근거한 정신대와의 혼동이다. 정신대는 12~40세 미혼여성을 군수공장에 동원한 것으로 일본·조선 여성을 합해 20만명선이었다. 베스트셀러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은 위안부는 1만8000명 선이며, 조선인은 20%인 3600명 정도라고 분석한다.
사태는 진흙탕 싸움으로 흐르고 있다. 윤미향 전 정의연 대표는 ‘친구 얘기’라며 전화한 이 할머니와의 첫 통화가 생생하다는 알쏭달쏭한 말도 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집단기억이 정의에 부합하는지, 누구를 위한 연대인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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