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전 부총리 "경쟁과 혁신 없으면 우리 경제는 망한다"

입력 2020-05-11 17:36   수정 2020-05-12 02:00

전윤철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은 11일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려면 정부가 혁명적인 수준으로 규제를 혁파해 기업들이 마음껏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전 부총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문명사적인 변혁을 맞아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기존 산업이 퇴조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혁신의 좌절’이 가져올 부작용을 경계했다. 전 전 부총리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승차공유업체 우버를 필두로 새로운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소비자도 혜택을 보는데 한국만 뒤처져 있다”며 “‘타다’처럼 기존 이익집단의 반발에 막혀 새로운 사업이 좌절되는 일이 반복되면 누구도 혁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경쟁과 혁신이 없으면 우리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전 전 부총리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공정거래위원장과 기획예산처 장관,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3~2008년엔 감사원장을 지냈다. 그는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경제가 다시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자유로운 경쟁’의 힘을 실감했다고 했다. 전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 때도 50여 개 그룹 중 10개 넘는 그룹이 쓰러졌지만 우리 경제는 살아남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치열한 경쟁과 혁신을 거치면서 경제 체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에 활로를 뚫고 고용을 창출한 주역은 경쟁을 통해 혁신을 거듭한 기업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 전 부총리는 “승자독식에 따른 피해는 정부가 보완해야 하지만, 신산업을 막는 식으로 기업의 혁신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 전 부총리는 “규제를 개혁하는 일과 민원 처리를 동급으로 생각하는 관료가 아직 많다”며 규제 권한을 가진 공직자들의 의식 변화도 촉구했다.<hr >전윤철 전 부총리 "한국판 뉴딜, 정부 아닌 민간 주도해야 성공"
"규제개혁은 피곤한 일 아닌 경제 성장 걸림돌 치우는 일"

전윤철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81·사진)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체질 전환을 진두지휘한 거목(巨木)이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11년간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감사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전 전 부총리는 한국이 외환위기 파고를 넘어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했던 것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제 조건으로는 ‘혁명적인 수준의 규제 혁파’를 꼽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규제 혁파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재임 시절 자기주장이 강해 ‘전핏대’로 불렸던 그는 여전히 꼬장꼬장하게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전 전 부총리는 코로나19발 경제 위기의 본질을 꿰뚫고, 구체적인 해법과 방안도 제시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11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이뤄졌다.

▷현 정부도 규제개혁을 강조하는데요.

“정부가 ‘사회적 규제’와 ‘경제적 규제’를 헷갈리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사회적 규제는 보건 수칙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규제입니다.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회적 규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한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를 ‘경제적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규제 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요.

“규제를 개혁하는 일과 민원 처리를 동급으로 생각하는 관료가 아직 많습니다. 규제 혁파를 ‘기업 활동과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우는 일’이 아니라 ‘피곤한 일’로만 보는 인식이 공직사회 전반에 만연하다는 겁니다. 과거 국가가 경제를 설계하고 성장을 주도하던 시절의 관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관료집단의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한국판 뉴딜’은 어떻습니까.

“정부가 방향을 설정하고 민간이 따라가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국판 뉴딜의 핵심도 경제를 가장 잘 아는 기업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하는 규제 혁파가 선행돼야 합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최첨단기술과 시장 상황을 가장 잘 아는 건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고용 창출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인간의 힘과 두뇌를 기계가 대체하면서 노동집약적 산업이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바뀌는 게 디지털 혁명의 본질 아닙니까.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가 생기긴 하겠지만 대량 고용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용을 창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 국내에 경쟁력있는 기업이 많아야 합니다. 일률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등 비합리적인 노동 규제를 완화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기업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려면 고숙련 노동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데, 한국 기업들만 규제에 가로막혀 연구를 멈추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게 불보듯 뻔합니다. 강성노조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부총리에 재직할 때 ‘노조 리스크’를 피해 동남아시아 등으로 떠나는 기업들이 있었는데, 이런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기업의 고용 창출을 가로막는 다른 요인은 뭘까요.

“노동 외에 기업 성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는 자본 투입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해 필요한 곳에 충분한 돈을 투입해야 기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시장 변화에 적응할 수 있죠.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협력이익공유제와 노동이사제 등 기업의 투자를 저해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부총리 시절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는 정책을 추진했어요. 하지만 지금 정부는 기업의 향후 투자를 위한 자원까지도 모두 근로자와 하청업체에 나눠주고, 의사 결정도 근로자에게 맡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는 보험의 기본적인 원리에 어긋나는 발상입니다. 지금의 고용보험은 직장인과 공무원이 오랜 기간 취업 상태를 유지하면서 꼬박꼬박 고용보험료를 낸 덕분에 어떻게든 재정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극심한 사업상 부침을 겪는 자영업자까지 포함되면 보험 재정이 급속히 악화되고, 결국 이는 땀흘려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채무비율은 한번 올라가기 시작하면 끝없이 올라가죠. 지금 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낮은 편이라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이 코로나19 이후 시대를 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계 산업구조 전체가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끝없이 태동하고 또 사라지겠죠.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기업이 마음껏 세계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혁명적인 수준으로 규제를 혁파해야 합니다.”

▷최근 폐업한 ‘타다’가 떠오릅니다.

“규제로 혁신이 좌절된 대표적인 사례가 타다입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승차공유와 같은 새로운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존 이익집단의 반발에 막혀 새로운 사업이 좌절되는 일이 반복되면 한국 경제는 희망이 없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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