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퍼스트'…60년 된 '공장법' 버리고 새 노동규범 만들자

입력 2020-05-12 17:44   수정 2020-05-13 01:24


지난 2월 하순 이후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노동시장에도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대량 실직으로 고용보험 구직급여(실업급여) 지급액은 매달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지난해 12월 6038억원이던 지급액이 4월에는 9933억원에 달했다. 이달엔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일자리 위기의 조짐은 사실 코로나19 이전부터 나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노동시장이 해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긱 이코노미(Gig economy·긱 경제)’ 확산으로 사업주와 근로자의 직접적인 관계가 허물어지고, 안정적인 대기업 일자리도 기술 발전으로 위협받고 있다. 전기자동차 도입으로 2025년까지 자동차·부품 기업의 일자리 40%가 사라질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한 뒤에도 세계적인 고실업과 고용 없는 성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항공·정유·철강 등의 업종까지 고용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일터혁신 전략과 정부의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공장법 시대에 정체된 노동법 규제

코로나19 사태는 근무 방식과 일하는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 전통적인 8시간 근무제(9 to 6)를 대신해 재택근무, 시차 출·퇴근제, 선택근로제 등과 같은 유연근무제가 확산됐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한시적인 근무 방식 변화이긴 하지만 근무시간과 장소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권이 커졌다.

일자리를 둘러싼 내부 규칙과 관행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노동 관련 법·제도와 노사 관행은 과거의 틀에 갇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노동 환경에 맞춰 새로운 노동규범(new workplace norms)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노동시장의 디지털화, 비대면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그런데도 우리 노동법은 60여 년 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의 공장법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근무시간이나 장소를 개인과 회사 형편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하는 유연근무제는 현행법 아래에서 사실상 본격 도입이 어렵다. 유연근무제의 종류인 시차 출·퇴근제, 선택근무제, 원격근무나 재택근무 등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절차대로라면 실제 도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개별 근로자와의 근로계약서에 명시하거나 취업규칙을 정비해야 하고,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도 해야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근로자 개인 동의뿐 아니라 노조나 노사협의회 등 집단적 동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의 효율성이 확인됐지만 기업들은 낡은 노동법·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개선이 가장 필요한 노동관계법 제도로 유연근무제(37.8%)와 해고 요건(18.9%), 취업규칙 변경 절차(14.9%)를 꼽았다.

기울어진 노사관계, 정부가 바로잡아야

주 52시간 근로제도 이번 기회에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국내 산업현장에선 잔업과 특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 기업엔 시장 점유율을 다시 높여야 할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근로자에게도 무급휴직 등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충할 기회다. 하지만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가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노·사·정이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3개월→6개월)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에 앞서 국회에 입법을 맡긴 노·사·정 합의에 노동계의 입장이 크게 반영된 영향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 때 경영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이 아니라 1년으로 하고 선택근로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제안으로 ‘코로나19 위기 극복 노사정 비상협의체’가 곧 출범할 예정이지만 이번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동계의 주장과 경영계의 요구 사이에서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노동시장 키워드는 비대면화, 기계화, 온라인화, 개별화”라며 “같은 환경이라도 전략적 선택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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