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으로 몰리는 자금 수요
한국은행이 12일 발표한 ‘2020년 4월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말 은행(예금은행 기준)의 기업대출 잔액은 929조2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27조9000억원 늘었다. 지난달 기업대출 증가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9년 6월 이후 최대다. 3월에도 18조7000억원 급증한 데 이어 두 달 연속 최대 증가폭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업대출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난달 말 대기업 대출 잔액은 177조2000억원이었다. 전달에 비해 11조2000억원 늘었다. 대기업 대출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실적과 현금 흐름이 나빠진 기업들이 은행 빚을 늘렸다는 분석이다. 대기업의 핵심 자금줄인 회사채·기업어음(CP) 등 직접금융시장이 얼어붙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기업의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1000억원에 그쳤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752조원으로 전달에 비해 16조6000억원 늘었다.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된 자영업자 대출은 356조8000억원으로 10조8000억원 불었다. 모두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코로나19로 주택시장도 위축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가계가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소비를 주저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자영업자가 몰려 있는 숙박·음식점업종의 3월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32.1% 줄었다. 도·소매업종은 6.7% 감소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은 자영업자들이 임차료와 공과금, 직원 급여 등 운영자금을 은행 대출로 조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 시장총괄팀 관계자는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가 은행 차입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한 결과 증가폭이 커졌다”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은행 초저금리대출,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정책금융 지원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올해 2~3월 매달 9조원 이상씩 늘었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달에는 꺾였다.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에 비해 4조9000억원 늘어난 915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증가폭은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3월(9조6000억원)과 비교해 반토막 수준이다.
가계대출에 포함되는 주택담보대출은 676조900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4조9000억원 늘었다. 3월 증가폭(6조30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주택 매매·전세 거래가 줄어든 영향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2월 8000가구에서 3월 4000가구로 급감했다. 아파트 전세 거래량도 같은 기간 1만3000가구에서 8000가구로 줄었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가 씀씀이를 줄이면서 관련 결제자금 대출이 줄어든 영향이 작용했다”며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려는 가계도 3월 대비 줄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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