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다음달부터 증권사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국내·외 개발사업에 자기자본 이상으로 채무보증을 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대형증권사의 순자본비율(NCR) 등 건전성지표 산출 시 특례대상에서도 부동산 대출액은 제외된다. 최근 수년간 몸집을 급격히 불린 증권사의 자본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부동산과 금융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기자본 이상 채무보증 금지
1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 했다.
이번 개정안은 금융위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부동산PF 익스포져 건전성 관리방안’의 후속조치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시장 안정화와 증권사 자본건전성 관리를 위해선 증권업계의 과도한 부동산금융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봤다. 증권사들은 주로 시행사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유동성 및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등의 형태로 부동산PF 사업장에 채무보증을 한다.
증권사가 준수해야 하는 부동산 채무보증 한도는 원안대로 자기자본 대비 100%로 설정됐다. 다만 시행일로부터 올 연말까지는 120%, 내년 6월말까지는 110% 등 단계적으로 한도를 축소할 계획이다.
채무보증 반영비율은 투자 유형별로 차등화했다. 아파트 등 국내 주거용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는 전액 반영하기로 했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과 해외 부동산은 투자액의 절반만 반영한다.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은 반영 대상에서 제외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프라 관련 투자규제는 완화해 달라는 업계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 수년간 부동산금융 사업을 대폭 늘린 메리츠증권 등 일부 증권사가 영향을 받겠지만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신규 부동산 채무보증이 급감해 한도 준수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아울러 금융위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 대형증권사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부동산 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부동산 대출금을 영업용순자본에서 전액 차감하는 일반증권사와 달리 종투사에는 위험값(18%)을 적용하는 특례가 부여돼 있다. 앞으로는 종투사가 국내 주거용 부동산 사업에 대출을 하는 경우엔 일반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영업용순자본에서 전액 차감한다.
◆"증권사, 금융시장 리스크요인"
당국 안팎에선 이번 개정안을 두고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금융 규제 강화는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증권사들이 한때 유동성 위기를 겪자 업계에서는 당국이 부동산금융 규제 강화시점을 늦출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왔었다. 금융위도 코로나19 이후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증권사에 대해선 NCR 등 자본건전성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지난달 내놓았다.
금융위는 종투사의 기업 신용공여 추가한도에서 부동산 대출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도 연내 추진키로 했다. 대형증권사가 자기자본의 200%까지 추가로 부여된 신용공여 한도를 명목상 중소기업인 특수목적회사(SPC)를 거쳐 부동산PF 대출 등에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증권사의 부동산금융 확대를 금융시장 전체의 시스템리스크와 연결지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발간한 ‘자본시장 위험 분석보고서’에서 280조원 규모로 성장한 부동산 그림자금융을 자본시장 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부동산 그림자금융은 증권사 PF대출과 채무보증, 부동산펀드, 유동화증권 등 비은행권이 취급하는 부동산금융을 뜻한다.
이번 보고서는 곧 퇴임을 앞둔 원승연 자본시장 담당 부원장의 ‘마지막 작품’으로 불린다. 보고서에서 원 부원장은 “금융시장 시스템리스크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규모가 커진 대형증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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