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를 대표하는 저서가 번역됐다. 《편견: 사회심리학으로 본 편견의 뿌리(원제 ‘The Nature of Prejudice’)》다. 성격심리학은 인간의 성격을 파악하면서 개인과 가족 간 관계, 사회 현상과 역사 등을 폭넓게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54년 나왔다. 이번에 출간된 번역본은 미국에서 초판 25주년을 맞이해 1979년 나온 개정판이 원본이다. 올포트는 편견 이론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동서고금과 지역을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해온 타자에 대한 적개심과 편향성을 논한다.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여전히 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명저로 꼽힌다.
저자는 편견을 “충분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잘못된 일반화에 근거해 어떤 집단과 그 구성원에 대해 지니는 적대적 태도와 감정이다.
편견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다. 적대적인 말, 차별적 행위, 물리적 공격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편견을 적대적인 말로 표현하는 데 그친다. “그 사람들은 너무 돈에 집착해” “그 동네는 더럽고 위험해서 밤에 거리를 나다닐 수가 없어” 등이다. 편견의 언어가 일상이 되면 ‘그 사람’과 ‘그 동네’에 대한 차별적 행위에 나서게 된다. 이 같은 편견은 훗날 이유 없는 증오로 연결돼 크나큰 비극을 낳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편견을 ‘성격화된 편견’과 ‘동조 편견’으로 구분한다. 성격화된 편견을 지닌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수 집단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바꾸지 않는다. 가책도 없다. 편견적 인간은 무엇이든 흑백 논리로 판단한다. 모든 관계는 친구 아니면 적이다. 모호한 상황을 참지 못한다. 동조 편견은 성격화된 편견보다는 덜하지만 법이나 종교, 관습과 같은 규범과 집단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 성격화된 편견에 선동당하는 경우가 많다.
관용적 성격도 있다. 관용적 성격을 지닌 사람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 어떤 일이 발생하든 먼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존중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
‘희생양’ 관념도 소개된다. 저자는 “우리는 ‘나의 불행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다”며 “죄와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수 있다는 생각은 태곳적부터 있었다”고 지적한다. 또 “난 편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편견에 대한 위선을 가졌다고 꼬집는다. 스스로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편견 때문에 내적 갈등에 빠지는 경우 심리적으로 억압, 방어, 타협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편견을 사실처럼 여기게 만들 사례를 찾기 위해 주력한다.
희생양으로 ‘점 찍힌 존재’는 죽음 또는 죽음보다 더한 굴욕을 받을 위험에 처한다.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여성이나 유색인종, 종교 갈등이 큰 국가의 소수자 등이다.
선동가들이 편견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현 정부는 부패했다” “재앙이 코앞에 왔다” “난 당신을 위해 희생하는 순교자다” 등의 수사를 내세우며 근거 없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저자는 “선동가들은 대중 사이에 대규모의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며 “선동가가 없을 때 대중은 흥분해 불타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운동이 실패로 끝날 무렵이면 꽤 많은 돈을 숨겨두게 된다”고 일갈한다.
책의 후반부에선 편견을 바로잡는 방법들이 제시된다. 첫 번째로 내세운 건 고용이나 주거, 교육 등에서 차별을 강력히 규제하는 입법 조치 시행이다. 사전에 저항이 있을지라도 국가 차원에서 강제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시민 대다수가 원칙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킨다. 정규 교육을 통해 선입견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나 드라마 등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편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도록 한다. 소수민족과 인종들이 특정 거주 지역에서 벗어나 다른 집단과 꾸준히 접촉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편견이 사라지는 데 도움이 된다.
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한 때였다. 이 책엔 편견을 뛰어넘고 모든 사회, 모든 국가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꿈꾼 저자의 당시 염원이 깃들어 있다. 그 울림이 여전히 쟁쟁하게 살아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남았다. 나이와 소속, 직업과 지위를 막론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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